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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재벌의 공익법인과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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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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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정에 여유가 있다면 학자금이나 자선사업 등 공익사업을 나랏돈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은 대학 운영을 국가가 세금으로 하기에 학비가 싸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는 비싼 대학 등록금과 수업료를 받는다. 우리나라도 여기에 속한다. 대학수업료를 대출받은 학생이 사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적잖은 금융부채를 짊어지고 출발하는 이유다.

한편 재벌이나 재산가들은 기업이나 재산을 자자손손 물려주고 싶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부담한다. 이로 인해 자칫 기업이 흔들릴 수 있다. 이 지점에 국가와 재벌의 설명하기 어려운 교집합이 있다. 바로 공익법인이다.
재벌이 공익법인에 출연한 금액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주는 대신, 공익법인은 국가를 대신해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재벌은 세금을 당장 안 내어서 좋고 국가는 세금을 거두어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수고를 덜어서 좋으며 덤으로 청년들은 수업료 대출을 받지 않아서 좋은 꼴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런데 세금을 줄이는 데 이골이 난 우리나라 일부 재벌기업은 이런 선의를 합법적인 재벌 세습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그 과정은 이렇다. ①재벌은 상속이나 증여를 할 금액으로 일단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세금을 면제받는다. ②공익법인의 대표에 재벌 2세를 앉힌다. ③공익법인 대표는 장학금 지급보다 아버지가 대주주로 있는 기업의 주식을 취득한다. ④공익법인이 해당 재벌기업의 주주권을 행사한다. 이렇게 하면 재벌 2세가 공익법인을 통해 아버지 회사를 손쉽게 물려받게 된다.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장학금은 세금면제 받은 것에 비해 턱없이 적게 주고.

이와 같은 문제점을 차단하기 위해 세법은 공익법인이 특정기업 주식을 출연금으로 받을 경우 그 주식을 출연한 법인 발행 주식총수의 5%까지만 세금면제 혜택을 부여하고(5% 룰) 초과분에 대해선 세금을 부과한다. 그리고 운영자금 중 30% 이상을 주식투자에 사용한다면 그 초과분은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30% 룰).
좋은 뜻의 공익법인 제도가 일부 몰지각한 재벌기업의 행태로 인해 복잡하고 어려운 규제 장치를 두고 있다. 바로 이 규정 때문에 수원 교차로 창업자가 사소한 세법규정을 위반했다고 하여 아주대에 기부한 150여억원의 장학금이 220억원이나 되는 세금으로 돌변해 기부자에게 돌아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보다 많은 장학금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공익법인이 출연금을 많이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출연금을 수익성이 있는 곳에 잘 굴려서 덩치를 키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을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일부 재벌기업의 행패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꼴이다.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자니 영악한 재벌기업이나 대재산가들의 탈세마당으로 전락할 것 같고, 규제를 강화하자니 젊은이들이 받을 장학금이 줄어들 염려가 있다. 딜레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면, 공익법인을 설립할 때 세금감면을 공익지출과 연계하는 것이다. 공익법인에 출연을 할 경우 일단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하자. 그리고 3년 이내에 해당 공익법인이 공익사업의 취지에 맞게 지출을 할 경우, 거기에 상응하는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알곡(진정으로 장학금을 주고자 하는 자)과 쭉정이(장학금 지급보다는 세금면제 혜택을 더 많이 받으려는 자)는 가려질 듯하다. 한번 해보자.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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