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까닭에 제주도에선 한로와 상강절 무렵이 한갓지다. 이 망중한의 시기에 마을 잔치를 마련한다. 곧 2년마다 열리는 마을체육대회다. 내가 사는 서귀포 성산읍에서는 홀수년에 읍민체육대회, 짝수년에 리 단위 마을체육대회를 열어 즐긴다. 추수감사의 의미를 담은 마을 대동제를 갖되 운동회 형식을 따른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우리 마을 '신풍리체육대회'는 지난 일요일에 열렸다. 마을 전체 9개 반 주민들을 세 팀으로 나눈 뒤, 마을 밖 제주시 등지에 사는 이들을 묶은 향우회 팀을 합해 전체 4개 팀이 천연잔디가 깔려 있는 마을 체육공원에서 한바탕 운동회를 펼쳤다.
유초등생부터 '망(望) 100세 어르신'까지 모두 선수고 응원단이다. '잘한다, 힘내라'가 경기마다 울려 퍼진다. 자기 팀만을 응원할 이유가 딱히 없다. 반이 달라 팀을 나누었을 뿐이지 같은 마을 사람에 대개 친족이니 '민우 삼촌, 용태 아방 힘내라! 우리 조카 군혁이, 민상이 잘 뛴다!' 같은 격려와 칭찬으로 팀을 가림없이 응원한다. 간혹 이거다 저거다 규칙 문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심판을 맡은 마을 연장자가 이러자 저러자 하면 금방 조용해진다.
10월 바람 좋고 볕 좋은 날을 골라 이렇게 311세대, 674명(2017년 12월31일 기준) 신풍리 주민에 향우회 인사들까지 함께 모여 한바탕 화목잔치를 여는 날은 '작은 대한민국'을 보는 듯하다. 남녀노소의 세대와 성별, 빈부의 차이, 성향과 성품의 차이가 없을 수 없다. 그래도 하루 온종일 맘껏 목청을 높이고 정을 나누며, 그 모든 구분과 차이를 내려놓고 '화목' 하나로 뭉치니 미덥고 귀할 뿐이다.
그에 앞서 나부터 기도할 일이다.
'이 가을, 화목하게 하소서. 바람과 햇볕은 이제 충분합니다. 이제 우리 마음 밭에 바람과 햇볕을 주시어 불평과 원망, 비난과 질시, 저주의 가라지들은 다 바람과 햇볕에 날아가게 하시고 알곡 같은 화목만 풍성하게 하소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배려와 존중으로 알알이 열매 맺는 화목을 풍성하게 거두는 이 가을이게 하소서!'
정희성 시인, 제주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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