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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교황과 최고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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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남은 역사적인 만남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이보다 더한 만남이 추진되고 있다. 김 위원장과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문 대통령이 평양 방문에서 김 위원장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권하자 김 위원장이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사실상 초청 의사를 표시했다. 놀라운 일이다. 교황과의 만남은 김 위원장의 후원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못 한 일이다.
한국의 가톨릭은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조선 최초로 북경에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이 첫 씨를 뿌렸다. 북한은 한반도 가톨릭과 기독교의 중심이었지만 공산주의 정권 수립이 결정타였다. 공산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동유럽은 가톨릭의 뿌리가 깊지만 아시아는 다르다. 뿌리를 내릴 기반조차 없다. 일당 독재인 공산당 정권 국가에서 선교를 하는 건 이슬람 중동 국가에서 선교에 나서는 것과 비슷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평화의 상징인 교황이 공산국가를 방문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교황은 중국 방문은 지속적으로 희망해왔다. 위기를 돌파할 길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신자를 확보하려면 미개척지를 찾아야 하는데 중국만 한 곳이 없다. 중국인의 1%만 신자로 확보해도 1000만명이 넘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에 애정을 표시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교황은 2016년 중국의 설 춘제(春節)를 앞두고 시 주석에게 새해 인사를 보냈다. "중국은 늘 위대한 대상이었고, 한 국가를 넘어 대단한 문화와 무한한 지혜로 다가왔다." 중국 국가주석에게 역대 교황이 보낸 첫 새해 인사였다. 중국 개혁ㆍ개방을 주도했던 덩샤오핑도 못 받았던 서신이다.
중국에서 가톨릭과 기독교는 여전히 금기다. 톈안먼 사태는 바티칸과 중국의 관계를 막다른 길로 내몰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상황을 바꿔보겠다고 나섰다. 교황은 수시로 중국에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고 유엔(UN) 총회에서 시 주석과의 만남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시 주석은 교황의 손을 잡기를 두려워했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운 시 주석은 집권 2기에 접어들며 독주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전통이던 집단지도 체제도 무너뜨렸다. 일부에서는 우상화까지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시 주석에게도 종교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종교에 대한 핍박과 탄압이 문화혁명 이후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종교를 집권의 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국 방문은 상상하기 어렵다.

교황의 방북은 분명 북한 정권으로서는 엄청난 선전의 기회이지만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교황 초청은 할아버지 고(故) 김일성 주석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다. 김 주석은 종교에 대한 두려움에 교황 초대 계획을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전 효과도 크지만 감수해야 할 부메랑이 너무 크다. 최고 존엄이 교황에게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북한 국민이 지켜볼 수 있다. 교황은 평화와 인권, 종교의 자유를 강조할 게 분명하다. 김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3대 세습과 1인 독재 체제에 균열이 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더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비핵화를 통한 북ㆍ미 간 국교 정상화만큼이나 북한과 바티칸의 수교가 중요한 이유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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