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국불교의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일찍이 조선의 불교 박해 이후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극히 미미했으며 70년대 근대화 이후에도 큰 변동이 없었다. 최근 들어 신도수가 줄었다고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절에 가는 '초파일 불자', '동지 불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피부로 느껴지지 변화는 거의 없다. 오히려 최근 일어난 명상 붐과 템플스테이 등으로 불교는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탈종교화의 영향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불교에서 느낄 수 있는 탈종교화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승려에 대한 신뢰'에서 찾을 수 있다. 출가 승려는 목사나 신부와 달리 성직자라고 부르지 않지만, 불교신도들에게는 불ㆍ법ㆍ승 삼보의 하나로서 종교적인 귀의와 신뢰의 대상이다. 그런데 최근 승려에 대한 믿음이 크게 약화되어, 불교계 바깥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승려들의 권위는 예전과 같지 않다. 삼보에서 배제하자는 의견까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에 대한 믿음의 약화는 종교지도자에게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신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낳는데, '믿음'이라는 정서 또는 의식의 상태가 인간의 사회적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심적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우리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제공하며 세상과 건전하게 관계 맺게 해준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린다. '왕따'가 그 어떤 물리적 폭력보다 고통스러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교는 다른 어느 제도보다 믿음이라는 심적 상태를 기르고 그 방향을 올바르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종교지도자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곧 인간성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 신성이나 영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사회적 존립을 가능케 하는 인간성 말이다. 탈종교화시대에 종교가 제도적인 것으로 남든, 사적인 것이 바뀌든 중요한 것은 믿음을 회복하고 그것은 온전한 것으로 만드는 일은 필요하다. 한 사회의 문제는 그 정신을 담당하는 종교지도자에게 있다는 성철스님의 말씀처럼, 안전하지 못한 사회,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인의 문제는 세상으로부터 받아온 무조건적인 믿음과 존경을 저버린 종교지도자들,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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