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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청론] 노사자치 존중, 정부 개입 자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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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달리하는 사람 사이의 대화는 본래 '적대적'이다. 이 경우 상대는 내 말을 귀담아듣거나 내가 의도하는 바를 수용할 생각이 많지 않다고 봐야 한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하는 협의는 더욱 그러하다. 노동법을 연구하는 필자는 매년 노사가 치르는 노사 협의의 전말을 눈여겨보는데, 협의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언제나 인내를 요구한다. 양측은 첨예한 논리 공방과 물밑 협상, 대승적 결단과 양보를 통해 비로소 합의에 다다른다. 따라서 노사 협의의 결과는 그야말로 노사 자치의 열매로서 당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지난 추석을 불과 며칠 앞두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하청업체 종업원들로 구성된 노조(하청노조)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기습 점거하고 농성을 단행했다. 그들은 하청업체 종업원 전원이 원청인 현대, 기아차에 직접 고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현대, 기아차와의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이 점거 농성의 압박에 못 이긴 것인지 고용노동부는 급기야 "법적 이해 당사자와 직접 이해 당사자인 현대, 기아차 사측, 정규직노조 및 비정규직지회 등이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하되, 필요시 사안별로 현대, 기아차 사측과 비정규직지회가 직접 교섭을 실시한다"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중재안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법리적으로 보더라도 원ㆍ하청 관계에서 원청 회사는 하청 회사의 단체교섭과 관련해서는 제3자에 불과해 하청노조와의 직접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아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하청 회사가 경영 주체로서 아예 실체를 가지지 않는 등 원청 회사와 하청 종업원 간의 직접적인 근로 계약 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하청노조와 원청이 직접적인 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원청인 현대, 기아차와 하청 종업원들 간의 직접적인 근로 계약 관계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부가 원청과 하청노조를 법적 이해 당사자 및 직접 교섭의 당사자로 인정하는 것은 국가기관의 성급한 중재로 중립성을 해치는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특히 중재안에 따라 하청노조의 직접 교섭 요구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원청은 자신들이 하청 종업원들의 근로 계약상의 사용자임을 자인하게 돼버린다.

둘째, 실상 현대, 기아차는 하청 업체 종업원에 관한 지난한 법적 다툼을 해결하고자 이미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먼저 현대차가 2012년부터 세 차례 회사와 직영노조, 하청 업체와 하청노조, 그리고 노조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를 당사자로 협의를 진행해 하청 업체 종업원 9500명을 현대차 종업원으로 고용하기로 하고 현재까지 6700명의 고용을 완료했다. 기아차 또한 2016년 노사 협의로 올해 상반기까지 하청 업체 종업원 1087명을 기아차 종업원으로 고용했고 내년까지 1300명을 추가 고용할 것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청 업체 종업원 특별 고용을 위한 노사 협의는 노사 자치의 결실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고용부의 중재안은 기존의 노사 협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하청노조가 현대, 기아차에 대해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경우 과연 앞으로 이뤄질 노사 협의가 제대로 진행될지, 노사가 어렵사리 이끌어낸 기존 특별 고용 협의는 유효할지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경제 위기, 고용 위기가 심각한 지금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한 투쟁을 통해 노동 문제가 해결되는 이 나라에서 경영을 유지하고 고용을 책임질 기업이 얼마나 남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에 고용부가 내놓은 중재는 중재의 도를 넘은 그야말로 국가기관의 중립성을 해치는 자의적인 개입이며 노사 당사자 자치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법치와 노사 자치를 중시하는 고용노동 정책이 간절할 따름이다.
김희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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