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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2018년 9월의 한국 ? '양계장의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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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의 주문

<b>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b>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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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2일 인류 최초로 태양 탐사선이 발사되어 태양까지1억5000만㎞를 가는 7년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호모사피엔스(똑똑한 사람)가 세상에 나와 4만년동안 진화하면서 쌓아올린 과학기술에 자부심도 느끼지만, 한켠에서는 아직도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간단한 구조를 가진 0.1㎛(1000만분의 1m)크기의 바이러스와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걸 보면 함부로 건방을 떨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눈, 귀, 코, 혀 그리고 피부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에서 취합하여 외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현재까지의 진화수준입니다. 요즈음 인공지능(AI)에 대하여 관심들이 매우 높지만 하드웨어 관점에서 보면 그 시작은 이미 세상에 나와있던 마이크, 스피커, 전등, 압력계, 온도계 등과 컴퓨터 메모리칩을 극소형화하여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들이 앱의 공급자 역할도 하면서 전 세계가 정보의 그물로 엮여 급속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몸에 있는 감각기관만으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그리고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다른 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알지 못합니다. 미래의 일을 지금 다 알 수 있다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희망이라는 개념도 없을 것이고 종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이유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그런 사람끼리 모여 살기에 편하도록 진화해 온 문명과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맹인의 나라에서는 눈 하나 가진 사람이 오히려 살기가 불편할지도 모르지요. 보통 사람에게 없는 능력을 가졌다는 예언가(?)들은 지금 세상에서는 돈을 잘 벌지만 옛날에는 자칫 잘못하면 혹세무민한다고 목숨도 잃었습니다.

어쨌든 인류가 수많은 발견과 발명으로 오늘의 문명을 이루었지만 자연으로부터 배울 것은 아직도 끝이 없습니다. 이런 분야의 연구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분야에서도 매우 많습니다.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톡소’라는 기생충이 고양이 창자 속에서 번식한 뒤 대변을 통해 퍼져 나갑니다. 이 대변에 오염된 음식류를 쥐가 먹으면 톡소는 쥐의 뇌 속에서 들어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어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도록 유도해 고양이 창자로 다시 들어가 번식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보이는 현상의 주인은 따로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흰개미는 크기가 5㎜정도되는데, 수백만마리가 모여 살면서 열심히 흙을 물어 날라다 높이가 3m 정도 되는 집을 짓습니다. 그 안에는 왕개미님 방도 있고, 수유실, 먹이 창고도 있는데, 1년 내내 온도가 일정하답니다. 이 미물들이 지은 집의 구조를 건축학과를 나온 많은 건축가들이 연구해서 에너지가 획기적으로 절감되는 친환경건축물 설계에 적용합니다.

100여년 전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는 개미들의 움직임에서 20:80 이론을 찾아냈습니다. 개미들이 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80%는 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 잘하는 20%만 따로 모아 놓았더니 거기서 다시 80%는 일을 하지 않더라는 거지요. 20%의 사람이 80%의 부를 갖고 있다는 파레토의 경제법칙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GE의 전설적 경영자 잭웰치도 이 원칙으로 인사관리를 해서 회사가 나태에 빠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참새가 곡식을 먹어치운다는 사실에 분노한 마오쩌둥은 대대적으로 인민들을 동원하여 참새 제거작전에 나섰고 참새는 거의 멸종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새가 없어지자 참새의 천적인 메뚜기가 창궐해서 3년 대기근으로 이어졌고 4000만명 이상의 인민들이 굶어죽었습니다. 인민을 사랑하고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주석님의 한마디가 가져 온 대가는 처참했습니다.

현 정부는 ‘우리 민족끼리’와 ‘더불어 잘 살기’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 집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국민적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 권력들의 잘못을 들춰내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라고 불리던 분)들이 “그 길은 검증되지 않았다”고 걱정을 하지만, 지금 정부는 더 밀어붙일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신인지 아집인지는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의 건설도 그런 과정을 겪었습니다. 당시 어떤 야당 지도자는 도로 건설현장에 드러누워서 반대를 했고, 미국의 제철 전문가들은 한국의 제철소 건설은 아직 이르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당시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 입니다. 물론 그간 실패한 사업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습니다.

공학적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확률적 근거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정책을 공학적 절차로 추진했다면 채택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 정책들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역이어서가 아니라, 검증이 안되었거나 실행과정에 문제가 많이 드러났었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판단을 내놓았을 겁니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소신과 아집이라는 정치적 영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나라를 끌고 가는 분들은 과거 투쟁의 시절에 수많은 회유, 협박, 고문을 견뎌냈을 것이어서 웬만한 고통이나 위험에는 흔들리지 않을 내공이 많이 쌓여있는 분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자연의 섭리들로부터 좀 더 슬기롭고 겸손하게 국가적 과제를 결정하는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류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까지 만들어 온 제도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입니다. 이게 문제가 쌓였다고 다시 전체주의적 틀로 간다는건 위험한 실험입니다. 전쟁의 도구는 계획경제국가에서도 잘 만들지만, 삶의 도구는 자유경쟁시장에서 훨씬 더 잘 만듭니다. AI 도 계획경제체제에서는 거의 발달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마오쩌둥과 함께 공산당을 만들었음에도 마오에 의하여 유배당하였던 덩샤오핑은 권력을 잡은 후 마오의 커다란 실패를 ‘그래도 공이 더 크다’고 묻어두고 안으로 힘을 길러 오늘의 경제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시진핑은 대국굴기를 내세우고 1인체제로 가고 있는데, 많은 중국인들이 마오시대가 다시 오는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치경제 제도이건 자본주의 때문에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이 오래 가기 때문에 부패하는 것입니다. 전제왕권이나 전체주의는 자본주의보다 상상 이상으로 부패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하여 나누어진 나라를 합쳐 ‘우리 민족끼리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큰 주제를 놓고 나라의 틀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 땅에 남의 군대가 들어와 있는걸 좋아할 민족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남에서 찾기 보다 우리가 어리석고 무능했음을 반성하는 냉정한 이성과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도록 힘을 기르자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같은 결기가 필요합니다.

Unfreeze-Change-Freeze라는 조직변화 모델이 있습니다. 기존의 틀을 해체하고 목표하는 새로운틀로 바꾼 후 고정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런 절차를 시작하려면 매우 정교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변화는 매우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조직구성원들이 지쳐서 당초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을 연말까지 해보겠다고 하다가 내년 예산 얘기가 나오더니 얼마 전부터는 20년을 지속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실험이 성공해서 정권도 오래 가고 국민들도 잘 살고 나라도 통일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한 정권의 검증되지 않은 20년 실험은 너무 깁니다.

한국인이 1년에 먹는 닭의 양은 1억마리입니다. 이 닭들 중에는 양계장 주인이 세운 가성비(價性費) 기준에 미달한 죄로 밥상에 올라 온 경우가 많을 겁니다. 닭은 태어나서 넉달쯤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여 여덟달쯤 되면 22시간마다 알을 낳고, 그 후에는 산란율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료의 반입부터 산란율까지 컴퓨터로 정확하게 통계를 내고 있는 양계장 주인은 정확하게 이 닭의 죽을 날을 알고 있지만 닭은 저 죽을 날을 모르겠지요.

사람은 자기 죽을 날을 모르기 때문에 늘 두려움 속에 살면서 자기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존재에 의지하게 되었는데, 그 존재의 가르침은 대부분 사랑과 겸손이었습니다. 20년 집권으로 지금의 보수를 궤멸시킬 수는 있겠지만, 지금 예상하지 못하는 이질적 반작용이 안으로부터 나오게 된다는 것도 자연의 섭리로부터 배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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