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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책 읽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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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아졌다. 긴 폭염 이기고 서늘하게 높고 파래졌다. 책 읽기에는 좋은 계절이 돌아왔는데, 우리 국민은 여전히 책을 읽지 않는다. 책 읽지 않는 국민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휴대폰이나 영상에 빠져있어 글을 외면한다.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1970~1980년대 산업화시대 때는 이른바 무교동소설 혹은 호스티스소설이라 지칭받는 소설이라도 끼고 다녔고, 고매한 철학자들이 쓴 명상록 같은 수필집이나 감성적인 시인이 쓴 수필집 한 권 정도는 가방에 넣고 다니면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대에 책을 읽었던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소설이나 수필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입방아에 올랐을 때나 어떤 사실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있을 때마다 '소설'이라는 단어를 들먹인다. 적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말은 '참'이고, 의혹받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소설 같은 황당한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최근 물의를 일으켰던 소위 '드루킹' 사건을 해명하는 발언이 그 하나의 예이다. 사건 연루의 당사자는 " '선플(긍정적 댓글) 운동'을 하는 줄 알았을 뿐 킹크랩과 같은 불법적인 댓글조작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드루킹 측 주장에 대해 "소설 같은 황당한 얘기" 라고 일축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또한 그가 후보자일 때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설 같은 얘기입니다. 검찰에 검은 거래까지 제안했다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 뻔한 얘기를 바로 기사화하고 있는 ○○일보는 같은 한 팀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로 선거판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저도 잘못 본 것이고 우리 경남도민도 잘못 본 것입니다"는 보도도 접한 적 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환기나 진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소설 같은 황당한 얘기" 또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설"이라는 말을 써서 소설을 비하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또 어떤 사건에서 당사자는 "'(…) 정신병원 강제 입원 의혹'에 대해 '보도가 아닌 소설'이라고 재차 반박하고 나섰다"는 모일간지의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보도는 사실이고 소설은 거짓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사건에 대한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화가 난다. 그들이 쓰는 소설이라는 어휘 때문이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소설이라는 어휘도 대체해서 쓰는 것이 못마땅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픽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소설은 있음직한 사실을 꾸며져 이야기해주는 진실이라는 정의를 그들에게 설명해줄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한다. 왜 소설이라는 어휘가 거짓말이라는 대용어로 사용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문도 하게 된다.

또 몇 달 전, 어떤 높은 분은 국무회의에서 "미약한 정책은 수필같은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때도 '수필'을 미약하다는 의미로 비유했다. 어떤 의도로 그런 무책임한 발언으로 글쓰는 사람들을 화나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착잡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작금의 문학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말로 주목받던 정치계의 어떤 분의 말, "같은 말이지만 깊은 말은 담(譚)이고, 독자적인 말은 어(語)이고, 소설적인 말은 화(話)이고, 질서 있는 말은 논(論)이며, 체계 있는 말은 강(講)이다"는 방언에 다소 위안을 느끼게 된다. 어떤 책에 근거를 두고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이 가을에는 책을 더 읽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책 읽는 국민이 되기 위해서.

유한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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