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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더 이상 아이를 못 낳는 진짜 이유

최종수정 2018.09.12 11:45 기사입력 2018.09.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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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더 이상 아이를 못 낳는 진짜 이유
얼마 전 일이다. 맞벌이를 하는 딸로부터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했다.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시터에게 시간을 당겨 와 줄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어렵다고 해 내게 SOS를 친 것이었다. 아직 세 돌도 안 된 유아인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겁지겁 달려간 내게 딸은 직속 상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껴둔 월차에서 반차를 쓰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했다.

인근 소아과의원을 찾았다. 원장은 "아이의 상태가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니 피검사도 할 겸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협진의뢰서를 써주었다. 대학병원에서는 혈액검사와 수액 처방을 내렸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입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오후 2시에 출근해야 하는 반차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루를 쉬어야 했다. 딸은 병원의 구석진 곳에서 다시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사 결과 아이는 빈혈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수액으로 조금 차도를 보여 입원을 면하고 통원 치료를 하기로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딸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내일 또 월차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딸이 다니는 회사는 출산 뒤 1년의 육아 휴직을 받아 주었다. 이로 인한 불이익 없이 진급시켰고, 주1회 근무유연제도 허용해줬다. 여직원의 출산과 육아에 비교적 우호적이다. 그럼에도 연이틀 업무의 공백을 빚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민하던 딸은 아이 아빠의 월차 사용 카드를 떠올렸지만 진행 중인 업무 때문에 월차 사용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아이의 병원 행은 내가 도맡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나마 내가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여름방학에 아이가 아픈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은 탓인지 딸은 둘째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얘는 외동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아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버겁다는 것. 2년 만에 대기 순번에서 벗어나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돼 육아 문제가 거의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여전히 이런저런 복병이 튀어나온단다. 그 와중에 바닥난 체력은 회복될 기미조차 없고. 첫 아이가 태어나기 무섭게 둘째 보기를 소망했던 사위도 육아의 길로 들어서며 이내 꿈을 접었다.

많은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건 육아의 어려움과 맞물려 있다. 정부가 마련한 여러 제도들은 여전히 현실과 괴리가 있다. 젊은 부부의 부모 세대가 그 틈새를 메워 주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부모 세대의 인식의 변화로 결혼한 자녀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 기간은 점점 짧아진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세대들의 경우 마음은 있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개별적으로 고용하는 베이비시터 또한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조건에 합당한 이들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 와중에 '질 보장'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상황의 중심에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가냘픈 어린 아이가 있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젊은 부부의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자유한국당의 인식처럼 '국가 성장'의 패러다임으로 출산 문제를 살피고 아이 낳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가치관으로 젊은이들의 정신재무장을 시켜야 한다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국가주의를 배격한다던 자유한국당이 이제 국가주의로 달려가는 건가.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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