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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섭과 아난, 법을 대하는 두 태도

최종수정 2018.09.06 11:50 기사입력 2018.09.0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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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섭과 아난, 법을 대하는 두 태도
최근 불교계의 범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계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꽤 많은 숫자다. 내용을 살펴보면 승원 생활을 하면서 발생하는 소소한 행동에 대한 규범이 대부분이다. 승가 내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계율이 제정됐기 때문인데, 사정이 달라지면 그 항목을 없애거나 적용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이를 한자어로 '지범개차(持犯開遮)'라고 한다.

부처님은 입멸을 앞두고 계율을 다 지켜야 하느냐는 아난의 물음에 "소소한 계율은 없애도 된다"고 대답하셨다. 그 소소한 항목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은 아난의 실수로 부처님 입멸 후 승가는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은 모든 계목을 폐기하지 않기로 한 가섭의 결정으로 일단락됐지만, 훗날 시대의 변화에 맞게 계율을 고치자는 주장과 부처님이 제정한 대로 준수하자는 주장의 대립으로 승단이 분열되는 원인이 됐다. 또한 명문화된 율장에도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조항들의 사문화를 막지 못했다.

가섭의 결정은 계율의 유연한 적용을 포기하는 대신 정통성을 택한 것으로, 대승불교권에서 그의 권위는 '염화미소'의 신화와 함께 도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 비구니 수계를 도운 일을 포함해 여러 가지 '멍청한 실수'를 한 아난은 혼란을 야기한 주범으로 비난받았다. 현대에 와서 가섭과 아난, 상반된 성격의 두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약자의 편에 섰던 아난이 스마트하고 진보적인 승려로 재평가된 반면 가섭은 '고지식한 보수주의자'로 폄하됐다. 동아시아의 가부장제에서 왜곡된 불교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아난의 복권은 환영할 일이다. 그렇다고 '소소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가섭의 결정을 깐깐한 원칙주의자의 고집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진지한 수행자의 행보가 간단치 않다.

절집 속담에 "어른은 장독을 깨도 괜찮지만 아랫사람은 종지만 깨도 야단맞는다"는 말이 있다. 법이 권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빗댄 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전근대사회에서는 이 말 역시 하나의 법으로 작용해왔다. 전근대사회에서 법은 주권자, 즉 왕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삼권분립이 이뤄진 민주사회에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법의 자의적인 적용을 막기 위해 법의 제정과 집행, 판단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나누어 맡겼지만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기보다 권력을 가진 자의 편에서 운영돼왔다.

무엇이 소소한 계율인가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이상, 모든 계율 항목을 존중하기로 한 가섭의 고심에 찬 결단은 법을 쉽게 개정하는 행위가 불러올 문제들에 대한 통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법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자칫 법을 지키려는 마음보다 편의에 따라 바꾸려는 마음으로 바뀌기 쉽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종종 자신이 만든 법보다 자기 자신이 우선한다고 믿는다. 대의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양도된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기관마저 자신이 법을 만드는 주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사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섭과 아난을 생각한다. 사법기관은 가섭과 같은 깐깐함으로 법을 공정하게 지켜주기를, 입법ㆍ행정기관은 여성을 비롯한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청원을 세심하게 들어줬던 아난의 명민함과 자상함으로 필요한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집행해주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특히 법의 자의적 적용을 막고 공평하게 판단해줄 것이라는 사법기관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국가 체제는 허울일 뿐, 무법천지와 다를 바 없다. 종교마저 세속법정에 그들의 분쟁을 가져갈 정도로 허물어진 참담한 현실에서 참괴하는 마음으로 가섭과 아난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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