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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극장의 추억/최영철

최종수정 2018.09.05 11:08 기사입력 2018.09.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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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상영관만 아는 요즘 관객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말이야, 우리 땐 헐값에 영화 두 편 보여 주는 동시 상영관이란 게 있었어, 인간적이었지, 한 편으론 섭섭하니 한 편 더, 한 번으로는 안 풀리는 인생이니 앞엣것 지우고 한 번 더
금방 떨치고 온 오줌이란 놈이 저도 끼워 달라고 지린내 앞세우고 상영관까지 졸졸 따라 들어왔지, 그놈들 무르팍에 앉히고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야, 푸르죽죽한 인생들이 흘려야 할 눈물이 저 정도 빗금은 되어야 할 걸
수백 번도 넘게 돌아갔을 화면이 시시한지 영화 세상은 자주 시공을 건너뛰었지, 박장대소 환호성 터트리느라 흐르는 눈물 닦느라 스크린은 자꾸 암전되었지, 건달들이 삑삑 휘파람을 불며 어딘가로 달아난 주인공들을 잡아들이면서 영화는 끊어질 듯 이어졌지
아까 그만큼 울렸으니 이번엔 배꼽 빠지게 웃겨 보내는 게 어때? 한 번은 뭉클한 멜로였으니 또 한 번은 화끈한 액션으로 버무려 주는 거야, 고달픈 장면일랑 적당히 날려 보내고, 차마 보아 넘기기 힘든 장면에선 잠시 암전되는 게 좋아
인생무상도 억울한데 속사포처럼 마구 내달려서야 쓰겠어, 이렇게 살아 봤으니 이번엔 분위기 바꿔 저렇게도 살아 보는 거지, 아깐 착한 눈물샘 지금은 무지막지 불한당, 인생은 역시 오금 저리는 반전이 있어야 살맛 나는가 봐
삭막하고 허전한 요즘 인생 막가는 거 딱 한 번으로 끝나는 막장 드라마여서 그럴 거야, 세상에 한 번 만에 되는 게 어디 있겠어, 그래, 안 그래?
잠시 쉬었다가 우리 분위기 바꿔 다시 한 번 시작해 볼까


[오후 한 詩]극장의 추억/최영철


■비련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이중 스파이는 아니더라도 생각해 보면 당신은 회계사가 될 수도 있었고 기자가 될 수도 있었고 여행 가이드가 될 수도 있었고 쌀집 주인이 될 수도 있었고 축구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 뿐이겠는가. 당신은 수백 수천 가지의 다른 당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다만 중년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고 여전히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당신은 오늘 저녁이면 어제 그랬듯이 당신이 그간 땀 흘려 이룬 평온한 저녁을 다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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