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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것

최종수정 2018.09.05 11:50 기사입력 2018.09.0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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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것
매해 성희롱ㆍ성폭력 예방 교육을 듣는다. 예전에는 형식적으로 때우고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최근 들어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과 더불어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교육이 더 알차고 밀도 있게 진행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올해 가장 귀담아들었던 부분은 교수로서 학생들과 면담하면서 성희롱이나 성폭력과 관련된 일을 접할 때 주의해야 할 자세였다.

학생들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인권센터가 아니라 일단 학과 교수들부터 찾는 경향이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가까운 이에게 먼저 기대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여기서 몇 가지 원칙을 확인했는데, 이를 귀찮아하지 않고 진지하고 심각하게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끊지 않고 "정말 힘들었겠구나" "얘기해줘서 고맙다" 등 정서적인 공감을 표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신뢰감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까짓 것 갖고 뭘 그래?" "네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야?" "그 아이(혹은 그 교수님) 내가 잘 아는데, 그럴 행동을 할 사람(분) 아닌데?" "이 사건이 밖으로 나가면 대학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거야. 그러니 네가 참아" 등의 말은 전형적인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말이니 삼가야 한다. 상담자가 흔히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나는 전문가도 아닌데 왜 나한테 왔어? 인권센터로 바로 가지"와 같은 말이라고 한다. 학생에 대한 방관은 무책임한 태도이니 공과 사를 분리해 책임감 있게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 그래도 이런 사례에 대해 학과 회의에서 진지한 논의가 있었던 터라, 이번 강의가 큰 도움이 됐고 평소 생각하던 바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 학기는 나 개인적으로도 마음 졸인 기간이었다. 크고 작은 성희롱의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우울증이 깊어지면, 그 마음결을 뒤에서 내내 따라가며 살펴야 한다. 문제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한 때 어빙 호프만의 '사려 깊은 무관심'과 '예의 바른 무관심' 개념이 도움이 됐다. 인간관계의 적절한 거리에 대해 호프만은 타인과의 물리적ㆍ신체적 경계뿐만 아니라 정서적 경계까지 존중하여 차이를 성찰할 때 진정으로 타인의 고통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접하면서 내가 그걸 다 안다는 태도는 자칫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을 성숙된 주체로 바라보며 적절한 거리와 예의를 지키고 진심 어린 공감을 표할 때 상대방도 빗장 걸린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게 된다.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듣는 행위'에 개입되는 '책임'을 생각한다. 책임은 맡은바 의무로서 도덕적ㆍ사회적ㆍ법률적으로 규정이 다양한 말이지만, 영어 어원을 따져보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에 반응하는 것이다. 'responsibility'는 'an ability to respond', 즉 '응답하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응답하는 것이 답일까? 그것은 바로 함께 나누어 갖는 자세다.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것은 그의 말을 잘 듣고, 어떤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음을 일깨우고, 그 일이 누구나 잘 대처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지혜로운 대처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그 무게를 나누어 지는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일에 수반되는 책임과 의무를 나누는 일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누구와 무엇을 함께 할까, 마음의 깃을 단정히 여미며 시작하는 9월이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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