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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구박(驅迫) 아닌 구박(求迫)

최종수정 2018.09.04 11:01 기사입력 2018.09.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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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

최근 들은 웃픈(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의 합성어) 이야기에는 구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못 견디게 괴롭힌다'는 사전적 의미의 구박(驅迫)이 아니다. 굳이 한자로 바꿔 표현한다면 구박(求迫)이 맞겠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기업들이 적게는 수조 원에서 많게는 수백조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줄줄이 발표하는 것을 두고 재계에서 흘러나온 뒷말에 바로 구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구걸(求乞)과 압박(壓迫)을 합성한 신조어가 구박이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날 당시 불거진 구걸 논란 과정에서 탄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문 정부가 재벌 기업에 구박한 결과가 투자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겠지만 한편으로는 웃어 넘기기에는 돌아가는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와 기업의 억지로 꾸민 듯한 부자연과 불편한 관계가 어떤 파장을 몰고 오는지 혹독한 학습효과를 지난 정권에서 겪은 탓도 있을 게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 일정을 마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평택=김현민 기자 kimhyun81@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 일정을 마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평택=김현민 기자 kimhyun81@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8개 대기업이 십시일반 모은 투자 총액은 400조원에 육박한다. 우리 정부의 한 해 예산과 맞먹는 말 그대로 '슈퍼 투자'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이들 대기업은 2013년을 마지막으로 투자나 고용 계획을 일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던 관행이 문 정부 들어 다시 깨진 것이다. 오히려 문 정부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대형 투자로 화답하려는 경쟁 심리가 더해져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진다. 한 대기업은 재계 서열이 낮은 경쟁사가 예상을 뛰어넘는 투자액과 고용 수치를 내놓자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숫자로 부랴부랴 수정해 발표하는가 하면 한 대기업은 경영상 예정되지 않았던 역대급 투자안을 뒤늦게 만들어 대열에 동참했다.

정부가 구걸을 했든 압박을 했든 독려를 했든 상관 없이 대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미래 가치에 돈을 쏟아붓고 고용 창출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좋을 게 없다. 다만 정부와 코드 맞추기를 위한 숫자놀음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시아경제 산업부 김혜원 기자 kimhye@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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