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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치적 레토릭의 빛과 그림자

최종수정 2018.09.04 11:50 기사입력 2018.09.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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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치적 레토릭의 빛과 그림자
정치와 레토릭(rhetoricㆍ修辭)은 밀월 관계다. 빗나간 정치적 레토릭은 사안의 옳고 그름보다는 어떻게든 민심을 선동하고 그것에 영합해 이득을 취하고자 한다. 얼마 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진보와 보수 진영에 속한 두 정치인의 정치적 레토릭을 두고 한쪽은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 다른 쪽은 앞뒤 가리지 않고 함부로 내뱉는 속된 '막말'로 일컫는 데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많았다. 이를테면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이제 새까맣게 됐다. 이제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 "같은 말을 해도 좌파들이 하면 촌철살인이라고 미화하고, 우파들이 하면 막말이라고 비난한다"는 그럴듯한 정치적 레토릭이 화제가 됐다. 정치적 레토릭은 한편으로는 진실과 정의를 밀도 있게 전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전복(顚覆)시키기도 한다. 더욱이 그런 언어적 수사는 진실이 빠진 겉만 번지르르한 포장과 진실의 왜곡 및 퍼포먼스를 통해 대중을 선동한다. 언제나 정치적 레토릭은 개인과 사회에 약이 되거나 독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거기에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정치적 레토릭을 논리적으로 명징(明徵)하게 분석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예시를 성찰해보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다의성과 애매함이 감동과 선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레토릭은 기존의 정치판을 갈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만하다. 단 고기 굽는 판과 정치판은 유사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삼겹살 판을 가는 것은 판을 깨뜨리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러워진 판을 세척해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판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 '지금'인지는 확정돼 있지 않다. 또한 정치적 판에서는 경우에 따라 새 판이 기존의 판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인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예시에서는 이분법적 진영의 논리의 토대 위에서 우파ㆍ좌파가 획정된 것으로 전제한다. 이것은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확증 편향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ㆍ보수라는 말도 사안에 따라, 맥락에 따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비록 우파라 할지라도 촌철살인의 수사를 구사할 수 있고, 좌파도 막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여기서 나타나는 논리의 비약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타자가 공감하기 어려운 자기정당화는 옳지 않다.

이와 같이 정치적 레토릭은 한편으로 사태의 정곡과 본질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도리어 진실과 정의를 애매하게 하거나 흐리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가진 본래적 특성과 다의적인 함축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레토릭은 늘 개연적 지식을 추구하고 상황론에 기대고 있다. 말하는 내용이 청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연상하게 하거나 청자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판단이나 기대를 확인해주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 모두가 습관적으로 행하는 것, 이득을 추구하는 행동 방식에 호소한다.

어떤 것이 절대적 진리인 양 지배하는 땅에서는 레토릭도, 민주주의도 자라지 못한다. 모든 사안에는 서로 반대되는 논변이 있을 수 있다. 레토릭은 동일한 사안이 정의롭게 보이게도 만들고, 동시에 정의롭지 않게 보이게도 만드는 기술이다. 자기가 취하는 입장에 따라 진실을 얼마든지 달리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적 레토릭은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그럴듯함과 애매함을 흔적으로 남긴다. 정녕 정치가의 진정성 있는 실천이 수반된 레토릭만이 사태를 진솔하게 밝히는 탁월한 정치적 언어로 빛날 수 있다.

강학순 안양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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