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걷는 이들 많지만 길이 멀면 존재감이 점차 없어집니다. 순례길을 걸으면 없어지는 존재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기회가 생기지요. 동행하는 이들 하나둘 사라지는 가운데 나와 대자연이 고독하게 마주하는 경험을 합니다. 창백한 푸른 점이 되어, 점점 더 작은 점이 되어, 마침내 자기를 무화시키는 거죠. 무화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된다는 뜻입니다.
순례길 구간 중 가장 험하기 때문에 도착하는 이들은 특별한 감회를 가집니다. 생장에서 일곱 시간. 더딘 사람은 열두 시간 걸리기도 하죠. 기진맥진 도착해서는 첫 구간을 넘었으니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자신감을 부풀립니다. 그러나 한두 주 지나면 사람들은 줄기 시작합니다. 동행하는 가족과 친구도 말수가 적어지죠. 순례길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와의 약속 때문에 촉발되고, 실제로 나의 현존 앞에 펼쳐지는 길입니다. 사정이 생겨 못 가면 다음에 그 지점부터 다시 가면 됩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습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따뜻한 미소와 친절로 대해주는 분들을 봅니다. 순례자 여권을 받아 서류에 기록하고 룸과 매트를 배정해주며 실제로 안내를 해주는 이들. 대부분 자원봉사자입니다. 노인들도 꽤 있습니다. 순례길을 여러 번 돌고 이제 은퇴해서 후배 순례자들을 돕는다는군요. 사랑과 평화, 존경과 감사가 온몸에 육화돼 수도원 전체를 은은한 향내로 덮는 분들입니다.
성모나 예수는 조각이나 그림 속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마을에, 사람들 가까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아 동행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진정한 고독에 이른 이가 생기면 그들의 몸 안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는 게 아닐까요? 하나가 된다는 건 뭘까요? 온화! 느낌과 생각과 표정과 체온 전체가 따뜻해지는 거죠. 마음의 망상과 몸 안의 병균들마저 덤으로 날아갑니다. 장수와 행복의 비결. 영성체험과 득도. 다 온화입니다. 체온이 올라가고 마음이 붉어져야 하지요. 저는 천국의 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따뜻한 몸과 마음이 곧 거기에 이르는 문입니다.
사람의 마을에 가면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일상의 자기를 벗어나 한 번쯤 고독과 마주한 이들. 더 크고 높은 차원에 올라 스스로가 티끌임을 절절하게 깨달은 이들. 일상과 신성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 이들은 절대로 갑의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 욕심 부리지도 않습니다. 오늘 이 순간,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즐거움 삼고 자기의 빛나는 고독 속으로 다른 티끌을 초대합니다.
인생 목표가 근사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작지만 쉬운 답을 찾았습니다.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한다(自利利他)'는 말보다 실감납니다. 자기 몸과 마음 따뜻하게 하기. 가까운 이웃 마음 다해 손잡아주기. 무얼 먼저 하든 괜찮습니다. 따뜻하면 됩니다. 나부터 따뜻해도 좋지만 상대를 따뜻하게 대해주면 나도 따뜻하게 됩니다. 그러면 창백한 푸른 점이 점점 어두워져 아주 꺼지는 일은 없을 테지요. 비록 '햇빛 속에 떠도는 작은 먼지 천체'지만 여전히 빛나는 별일 테지요. 옛 시조에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했는데, 이웃에게 다정한 건 병이 되지 않습니다. 다정하세요. 다정합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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