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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양치기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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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았다. 수사도 그렇게 했으면…" 지난 금요일 언론사 중견간부로 있는 지인이 허익범 특별검사의 수사종료 발표에 대해 필자에게 한 말이다.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국정농단에 대한 2심 선고로 인해 여론의 관심을 분산시켜 맹비난을 피했다는 비아냥거림일 것이다.

약 60일 전 국민혈세 31억4900만원을 들여 출범한 허익범 특검은 증거에 따라가며 수사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고 이후 수사과정 브리핑을 통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지난 27일 수사결과 대국민 보고는 초라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특검 수사에서 국민들이 제일 알고 싶었던 것은 지난 대선 전후 인터넷 기사 댓글 118만개를 조작한 드루킹 일당의 배후에 정치세력 개입의 유무였다. 드루킹이 댓글조작에 활용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유지비용이 한 해 11억원에 이른다는 보도는 이런 의혹을 더욱 부추겼고 이를 밝히기 위해 특검의 '돈 흐름 수사'는 필수였다.

하지만 특검의 자금추적 수사는 경공모가 불법댓글작업을 위해 자금을 지원받은 공급처 수사보다는 드루킹 측이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곳을 찾는 사용처 수사 쪽으로 흘러갔고 수사과정 흘리기식 브리핑은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결과만 초래했다.

드루킹 일당의 배후세력으로 의심받았던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수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검은 김 지사가 댓글 조작에 가담했다는 여러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수차 공식브리핑을 통해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특검이 호언장담한 '한방'은 없었고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에는 "공모관계의 성립 여부와 가담 정도에 대한 다툼의 여지와 소명부족"이라는 범죄성립의 기본요건에 대한 의심마저 표현돼있다.
필자는 솔직히 김 지사가 특검에 출석할 때 지지자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피의자라기보다는 유세장에 입장하는 정치인 모습으로 보여 부정적인 시각이었지만 이 정도의 특검 성적표라면 당시 김 지사의 모습이 이해된다. "늑대(결정적 증거자료)가 나타났다(있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의 모습이 김 지사에게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옛날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피리합주를 좋아해 300명의 악사를 모아 연주 듣기를 즐겼다. 그런데 남곽(南郭)이라는 자가 스스로 피리연주에 능하다고 선왕을 속여 악사단에 참가했으나 연주하는 시늉만 했다. 선왕이 죽은 후 민왕도 피리를 즐겼지만 합주보다는 독주를 즐겼다. 그런 상황이 오자 남곽은 줄행랑을 쳤다. 중국 고사 '남우충수'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5일 특검은 수사기간 연장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지금까지 확보한 증거만으로도 재판에서 김 지사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어 연장 수사는 필요 없다"고 발표한 데 이어 27일 국민에게 수사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또 한 번 자신 있게 기소사실을 밝혔다.

김 지사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사법부의 심판을 받을 처지에 놓였고 김 지사에게는 가장 예민할 수 있는 공직선거법까지 적용됐다. 어찌 보면 김 지사 역시 자신의 혐의에 대해 억울할 수도 있지만 특검은 공소유지를 자신했다. 허 특검이 양치기 소년이나 남곽이 될지 아니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 공익의 대표자가 될지 사법부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된다.

박관천 객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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