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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홍차·초콜릿, 그 곳에 숨은 욕망의 세계사

최종수정 2018.08.24 10:58 기사입력 2018.08.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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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홍차·초콜릿, 그 곳에 숨은 욕망의 세계사

'티소믈리에…' 茶 때문에 벌어진 아편전쟁 등 홍차와 관련된 역사·문화·영화 등 소개

'미술관에서…' 회화·조각 속의 전쟁사...아즈텍 전투식량 초콜릿의 유럽행 일화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그녀의 두 붉은 입술이 산들바람을 느끼게 한다. 차를 차갑게 식히고 연인을 불타오르게 한다. 하얀 검지와 엄지가 공모하여 찻잔을 들어 올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영(1683~1765년)이 부른 '영성의 사랑'이다. 그는 차(茶)를 감성의 무기로 봤다. 실제로 중국에서 태어나 세계로 뻗어나간 차는 유럽의 문화를 꽃피웠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독주로 이어지는 장대한 세계사가 전개됐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야심이다.

영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킨다. 차를 얻기 위해서였다.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대승을 거두고 홍콩을 장악하면서 난징조약을 이끌어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서명한 청나라는 그 뒤로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전쟁에 대한 배상금과 이전에 몰수해 폐기한 아편에 대한 보상금으로 2100만 달러를 배상하고, 홍콩의 양도ㆍ샤먼ㆍ상하이ㆍ광저우ㆍ푸저우ㆍ닝보 등을 강제로 개항했다. 왕조가 기울어지는데 차가 한 몫을 한 셈이다.

영국인들은 밀크 티를 좋아한다. 마시는 홍차의 95%를 차지한다. 영국 왕립화학회가 2003년 발표한 '한 잔의 완벽한 홍차를 우리는 방법'에 따르면 맛있는 홍차에는 아삼 산의 찻잎, 연수, 차갑고 신선한 우유, 백설탕이 필요하다.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우유. 찻잔에 먼저 부은 다음에 홍차를 넣고 풍부하고 맛있어 보이는 색상의 조화를 완성해야 한다. 여기서 우유는 빅토리아 왕조시대 말에 상품화된 저온 살균된 것을 가리킨다.
중국인들도 밀크 티를 마신다. 아편전쟁 뒤 많은 영국인들이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중국에는 우유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다. 목장도 적어서 신선한 우유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856년에 가당연유, 1885년에 무당연유를 캔의 형태로 보관해 유통했다. 신선한 우유보다 연유를 사용하는 밀크 티가 더 일반화된 이유다.

정승호 한국티협회 회장이 쓴 '티소믈리에를 위한 홍차 속의 인문학'은 홍차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19세기 세계사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영국식 홍차를 알아보고, 그로 인해 탄생한 인문학적 이야기들을 총망라한다. 그는 프롤로그에 "영국식 홍차가 세계의 생활문화에 불러왔던 패러다임의 거대 변화를 살펴보면, 홍차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모티브였음을 알 수 있다"고 썼다. 홍차가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등장한 역사, 문화, 사회, 명화, 영화, 동화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을 풀어쓴다.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루다보니 명화, 영화 등 몇몇 분야에서 심도 깊은 내용은 기대하기 어렵다. 영화의 경우 다루는 작품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년)', '마이 페어 레이디(1964년)', '곰돌이 푸(1926년)', '내니 맥피-우리 유모는 마법사(2005년)' 네 개에 불과하다. 홍차와 연관된 대목도 특정 장면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문다.

[남산딸깍발이]홍차·초콜릿, 그 곳에 숨은 욕망의 세계사


이러한 특징은 이현우 기자가 쓴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에서도 드러난다. 동서양을 망라한 회화와 조각에서 관련 역사를 소환하는데, 특히 전쟁사의 중요한 장면을 담은 전쟁화에 주목한다.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의 '다윗'에서 돌팔매의 전쟁사를 살펴보고, 윌리엄 B.T. 트레고의 '포지 계곡으로 행군하는 미국독립군'에서 'March(3월)'가 어떻게 '행군'이란 뜻을 가지게 됐는지를 알아보는 식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주제들을 뽑아내 전쟁의 뒷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쓴다. 저자는 머리말에 "문학 속 텍스트의 행간에서 수많은 서사적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듯이, 그림 한 폭의 구석구석에는 말과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들이 녹아들어 있다"고 썼다. "그림에는 전쟁에 얽힌 흥미진진한 속내가 가득 차 있음을 미술관에서 수많은 작품들과의 눈 깊은 교감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됐다"고 적었다.

이 책에도 홍차만큼 진한 감성을 품은 식재료가 나온다. 매년 밸런타인데이(2월14일)에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초콜릿이다. 애초 연인들의 달달함과는 거리가 먼 전쟁터의 음식이었다. 아즈텍 군대의 중요한 배급식량 가운데 하나로, 카카오 콩을 갈아 환약이나 얇은 모양으로 빚어 행군하는 모든 병사들에게 배급됐다. 효용성을 파악한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년)는 이를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1500년~1558년)에게 바쳤다. 그 뒤 초콜릿은 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 상류층의 기호식품으로 정착됐다.

저자는 호세 살로메 피나가 그린 '에르난 코르테스'에서 초콜릿을 떠올렸다.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 투구를 벗고 왼쪽을 응시하는 초상화다. 어떤 면면을 보고 초콜릿을 생각했는지는 기술돼 있지 않다. 회화를 소개하는 설명도 비교적 간소하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나 특색을 설명하기보다 초콜릿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데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을 파괴한 침략자다. 처음 멕시코 땅을 밟으면서 타고 온 선박 열한 대를 불태운 일화로 유명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멕시코를 정복하겠다는 사명을 온 마음으로 다짐했다. "만약 우리가 집에 돌아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보트가 아닌, 이들의 보트를 이용해서 돌아갈 것이다." 이어진 여정은 차를 향한 영국의 그칠 줄 모르는 도전과 흡사하다. 순식간에 아즈텍 제국을 점령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522년에 누에바에스파냐 총독으로 임명된다.

코르테스는 한동안 위대한 탐험가이자 전략가로 간주됐으나, 유럽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잔인무도한 살인마로 평가된다. 그는 멕시코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즐겼으나, 스페인에서는 일개 장수에 불과했다. 1526년에 월권 혐의로 파면되자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카를 5세의 환심을 얻어 1540년까지 10년 이상 총독으로 군림한다. 드넓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다시 찾은 스페인에서 그는 환대받지 못한다. 카를 5세에게 초콜릿까지 바치지만 외면당하고, 더 이상 신대륙을 밟지 못한다. 초콜릿을 건네며 전한 첫 고백의 결과는 비극이었던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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