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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권정일

최종수정 2018.08.20 08:58 기사입력 2018.08.2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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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을 망가뜨리며 소녀는 자라고
인형을 버리면서 소녀는 완성되지

아주 어린 인형의 눈망울 같은 나날들
살아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형들

말해 봐 말해 봐 립스틱을 바르며
말해 봐 말해 봐 머리카락을 물들이며

자란다는 것은 인형을 버리고
인형이 되는 일

인형을 버린 소녀 인형을 버린 인형
버리고 버려지며
온 힘을 다해 인형을 망가뜨리며 웃지 마
온 힘을 다해 인형을 버리면서 울지 마

자란다는 증거야 앵두를 먹으며
머리카락은 자라고 스커트는 짧아지지

[오후 한 詩]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권정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자란다는 것은 인형을 버리고" "인형이 되는 일". 이 얼마나 참담하고, 이 얼마나 안타깝고, 이 얼마나 슬프고, 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이 얼마나 경악할 일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인형이 되는 일". 그러나 그 일은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일. 내 어머니가, 내 아내가, 내 딸이 "온 힘을 다해 인형을 망가뜨리"면서 "인형을 버리면서" "버리고 버려"지면서 바로 내 곁에서 울고 있는데도.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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