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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흔들리는 여름에서 '침묵의 여름'으로

최종수정 2018.08.17 11:50 기사입력 2018.08.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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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흔들리는 여름에서 '침묵의 여름'으로
이번 여름이 오기 전에 '흔들리는 여름 앞에서'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썼습니다. 그러나 올여름은 이례적인 폭염으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위태롭게 흔들린 여름이 됐습니다.

지난 1일, 서울이 111년 만에 역대 최고 기온을 달성한 순간 우리는 그 속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기록은 역사가 됩니다. 기록에 담긴 의미가 어떤 시각으로 나타날지는 훗날의 일이지만, 우리가 폭염의 역사가 새로 쓰인 시대를 겪은 것은 분명합니다.

39도에 이르는 올여름 더위는 단어 그대로 거칠고 사나운 '폭염'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어찌나 뜨거웠던지 겨울철 온풍기에서 나올 법한 열기를 건물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곧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폭염 때문에 거리는 예년보다 확실히 한적했습니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자동차, 주택, 상가, 회사, 지하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풍경을 보니 레이철 카슨이 쓴 책 '침묵의 봄'이 떠올랐습니다. 살충제와 제초제로 인해 봄이 와도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제목부터 생태계 파괴의 상징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책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로 인해 균열이 간 자연을 고발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올여름은 침묵의 봄 대신 침묵의 여름이 떠오릅니다. 도로에 버스도 다니고, 자가용도 다니고, 에어컨 작동 소리는 들리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여름이 오면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하던 아이들의 명랑한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든 기계와 인공물은 거리 곳곳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서로 직면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침묵이 그 자릴 대신할 뿐입니다.
올해 들어 관측지점 세 개 중 두 개 이상이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경신했습니다. 이번 경신을 예외적인 기상이변으로 보면, 내년엔 평년과 같은 여름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희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가올 미래에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최고 기온 경신이 보다 자주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최고 기온 기록 경신 요인인 확장된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원의 열 축적, 대륙 기온 상승의 조건은 이제 우리 시대에서 흔하게 접하는 조건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매년 접하는 자연현상이 됐습니다. 최고 기온이 언제든지 자주 교체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여름이 오면, 가을과 겨울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면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반대편이 다시 한 번 기울어져야 합니다. 폭염이 앞으로의 가을과 겨울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예측되진 않더라도 한파, 폭설, 폭풍, 태풍이 이례적인 기록과 함께 크게 교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비교적 안심해온 가뭄이나 습도, 해수면 높이 등도 또 다른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침묵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흔들리는 여름을 지나 침묵의 여름과 마주했습니다. 맹위를 떨치는 폭염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시대에서, 기상청은 기상전문 국가기관으로서의 자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매해 체감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날씨의 엄중한 경고가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희망으로 치환하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차갑고 예리한 분석과 폭넓은 통찰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난히 크게 흔들렸던 올여름, 침묵의 여름이 이렇게 8월의 끝을 향해 흘러갑니다.

남재철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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