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부부가 시골 농원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아름다운 딸이 있었죠. 딸은 점심 뒤의 휴식 시간에 부부가 쉬고 있는 정자로 우편물을 가져오곤 했습니다. 기르던 개가 늘 뒤따라왔지요. 어느 날 딸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젠 아무도 우편물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가 우편물을 들고 올 시간이 되면 개만이 정자 앞으로 나아가 딸이 걸어오는 공간을 펄쩍거리며 뛰어다녔죠. 살아 있는 딸 반기듯 말입니다. 이 개가 그 시각에 펄쩍거리는 이유를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 딸에 대한 사랑이 깊은 부부만이 이 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을 한복판에 있는 성당 이름 속에서 영원을 삽니다. 생트 푸아 성당. 303년에 열두 살 나이로 죽은 한 귀족 소녀의 유골이 안치된 곳입니다. 그녀는 부모 몰래 기독교인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다가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집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프랑스 산골짜기 아쟁(Agen). 콩크에서 200㎞ 떨어져 있는 곳. 그녀가 죽은 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독교가 공인(313)되고 나서도 한 세기가 더 지난 5세기. 성인으로 추증된 그녀의 유골을 처음으로 모신 곳이 바로 아쟁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400년쯤 지나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8세기 말엽 다동(Dadon) 수도사는 콩크의 첩첩산골에 은거하면서 작은 베네딕트 수도원을 만들죠. 866년엔 수도사 아리비스퀴스(Ariviscus)가 푸아의 유골을 아쟁에서 훔쳐 와 여기 수도원에 안장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공간에 와서 기도하고 병이 치유되는 사례가 늘자 순례자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됩니다. 오늘날의 콩크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성녀 유골의 이송을 '은밀한 이동(transfert furtif)' 혹은 '신성한 도둑질(pieux larcin)'이라고 합니다. 말이 예쁩니다. 도둑질이긴 한데 신성하다! 천 년 이상 수많은 순례자가 여기를 찾아와 참배하고 다시 산티아고를 향해 길을 떠나곤 했습니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습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앞치마에 빵을 몰래 감추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다 참수형당한 소녀 이야기가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신을 향한 송가를 합창합니다. 어지간한 마음의 병도 어찌 낫지 않겠습니까.
생트 푸아 성당의 성립은 '지금 여기'를 신성한 장소로 바꾸고 싶은 민중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험한 산골 지형, 휴양지의 서늘한 기온, 수행처의 고적감, 성지로 가는 중간 경유지, 애처롭고 극적인 순교 이야기와 그 증거, 누적된 시간과 성스러움의 정통성, 이 모든 요소의 결합이 신성한 장소 탄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종교에도 고도의 마케팅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는 우리나라 사찰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삼세가 다 마음이고, 간절한 마음이 진신사리보다 빛납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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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려고 맞았는데 아이가 생겼어요"…난리난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