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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논점은 주 52시간 아닌 재량권 비대칭

최종수정 2018.07.31 11:50 기사입력 2018.07.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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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논점은 주 52시간 아닌 재량권 비대칭
한국인은 늘어지게 일한다. 그러나 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칠레나 그리스 등 여유와 낭만의 남쪽 나라들보다도 낮다. '눈치 야근' '의리 야근'처럼 회사가 공동체가 되니 체류시간만 늘어난다. 오죽하면 형사처벌로 규제하려 할까. 이렇게라도 해야 생산성이 올라가고, 신규인력을 더 뽑아 취업난도 완화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한편 주당 100시간은 일해야 한다는 100시간 노동론이 있다. 일이야말로 진짜 공부이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는 극단적 주장이다. 일론 머스크의 100시간 노동이 유명하다. 구글 원년 멤버이자 야후 사장이었던 머리사 메이어는 초기 구글 때 심지어 주당 130시간 일했다고 한다. 이 같은 문화는 한국 스타트업계로 수입됐다. 한번 '대박' 터지면 산출량이 크다 보니 노동투입을 꺼리지 않는 초고생산성의 도박이 된다.

어느 나라에나 노동법이 있지만 예외조항도 있고 디테일도 다르다. 예컨대 영국은 17주 평균으로 주당 48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 탄력근무제를 해도 무조건 그 주에 52시간을 넘어서는 안 되는 우리와 다르다. 또 옵트아웃(opt-out)이라 하여 사업주와 합의하면 규제로부터 스스로 빠질 수 있는 재량도 있다.

내 업무의 모습을 내가 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질 때 노동자는 강해진다. 재량은 그렇게 사람을 움직인다. 관료는 과로도 불사한다. 내 재량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느낌을 알기 때문이다. 자유 재량의 최정점에 있는 교수는 '월화수목금금금'을 노래하며, 왜 자기 방의 연구원들이 열정이 없는지 의아해 한다. 이유는 하나, 재량권이 자기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노동자에겐 재량권이 없다. 내가 일을 함으로써 세상을 바꾼다는 효능감을 찾기 힘들다. 이럴 때 우리는 조직과 절차의 부조리에 쉽게 침묵하는 굳어진 사회를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재량권은 갑을병정 아래로 내려갈수록 옅어져 간다. 정작 규제가 필요한 곳은 피라미드 말단이지만, 기업당 인원 수가 적어 이번 법 적용에서도 미뤄졌다. 속칭 52시간 시대에 적극 대응하는 곳은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 재량권이 많은 갑 기업이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한국의 낮은 생산성은 이처럼 재량권의 비대칭에서 발생하기에, 징벌적 규제가 해법이 아니다. 가장 명쾌한 해법은 노동자들에게 손실된 재량만큼 금전적으로 보상하면 된다. 초과 근로시간을 처벌하는 대신, 미국처럼 두 배 가까이 지불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고용주는 알아서 대책을 세운다. 영세해서 지불 여력이 없다면 스타트업의 열정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미래의 불확실한 대가를 취할 재량을 주면 된다. 바로 지분이다.

징벌적 규제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푸는 일에 약하다. 오히려 구조를 왜곡할지 모른다. 근무시간 중 스터디를 한다거나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화이트칼라의 건강한 생태를 형사처벌이 두려운 고용주는 이제 못마땅하게 볼 것이다.

일본 NEC와 다이킨공업은 모니터 위 카메라로 눈꺼풀의 움직임을 파악해 직원이 조는 경우 온도를 내리는 시스템 에어컨을 개발했다. 얼굴인식 인공지능(AI)이 도입됐다는데, 누군가 비슷한 기술로 실제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파악하고 싶어할지 모르겠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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