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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입처개진(立處皆眞)

최종수정 2018.07.30 13:33 기사입력 2018.07.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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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臨濟錄)은 당나라 선승 임제(臨濟) 의현(義玄)의 가르침을 엮은 책이다. 의현이 죽은 뒤 제자 삼성(三聖) 혜연(慧然)이 편집한 것으로, 대승 불교의 한 조류인 선(禪)의 진수를 설파한 책으로 통한다.

임제록에 등장하는 불교 용어 중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말 가운데 하나가 입처개진(立處皆眞)이다. 보통 수처작주(隨處作主)와 함께 쓰인다. 어느 곳에서든 주체적일 수 있다면(수처작주) 그 서는 곳이 모두 참된 곳(입처개진)이라는 뜻.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함의가 담긴 말이다. 가는 곳마다 스스로가 주인이 돼 참된 곳으로 만들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이는 십수 년 전 처음으로 사회 생활 첫발을 디딘 이래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필자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주인의식. 한 회사와 스스로에 대한 가치 제고는 주인의식에서 시작한다는 믿음은 여전히 확고하다. 때로는 세파에 흔들려 퇴색하기도 했지만 끈을 놓을 수 없는 오묘한 힘이다.

잠시 잊고 지냈던 가치를 다시 한 번 곱씹을 수 있었던 건 지난 금요일 한 기업 회장의 취임사 때문이다. 재계 서열 6위의 거대 기업 포스코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최정우 회장은 인생의 기준점으로 삼아 온 좌우명이자 신조로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주저 않고 꼽았다. 36년이라는 오랜 철강 인생을 단 여덟 마디 한자로 압축한 것이다. 최 회장이 선후배 경쟁자를 물리치고 면접 위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화려한 언변도 특출난 재주가 있어서도 아니다. 단 두 권의 노트였다. 내가 속한 조직의 문화나 회사의 경쟁력, 경영진의 행태가 좀 더 바뀌었으면 하는 걸 느낄 때마다 메모한 두 권의 노트.

최 회장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모르지만 가슴에 와닿은 것은 평소의 신념과 맞닿은 바가 있어서다. 최 회장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훗날 포스코 회장이 되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진짜 그런 날이 올 줄은, 그것도 이렇게 빨리 '청년 급제'할 줄은 스스로도 몰랐을 테지만 준비된 회장이라는 평이 조직 내에서 나오는 것은 주인의식을 갖고 때를 기다린 덕분이 아닐까.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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