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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 협상은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최종수정 2018.07.23 14:43 기사입력 2018.07.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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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문정인 외교안보특보-홍익표 민주당 의원 대담집 '평화의 규칙'

[남산딸깍발이] 협상은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처럼 통일 내세울수록 남북관계는 오히려 역행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준비하는 것"

버락 오바마. 미국의 45대 대통령. 인권변호사 출신이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그는 잘생기고 말솜씨가 뛰어나다. 어린 아이에게 머리를 만지게 할 정도로 격의 없는 성격이며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 중동평화회담 재개를 이끌어 200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미국에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끌어 백악관을 무지갯빛으로 밝힌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46대 대통령. 부동산 재벌 출신이자 TV쇼 진행자. 화려한 여성편력과 수준이하의 경솔한 발언, 멕시코 장벽 같은 허황된 공약(그것도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하는)을 내세웠던 인물. 그는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적국의 수장이 핵 버튼을 언급하자 "내 책상 위에는 더 큰 게 있다"며 유치하게 맞섰던 대통령이었다.

2018년 현재. 적어도 한국인들에 있어 이 둘의 평가는 180도 바뀌었다. 누가 봐도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사람은 오바마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바마는 보편적으로 보면 위대한 대통령일지 몰라도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나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은 아무것도 안하는 대북정책으로 북한이 핵능력을 발전시키도록 방관했다. 한미일 군사 동맹을 위해 일본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합의를 종용했다. 어처구니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던 트럼프, 오히려 그가 한반도 평화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그의 전통적인 미국외교 문법에서 벗어난 행동들이 상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었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김정은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통일정책은 예측불허와 아이러니의 연속이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담집 '평화의 규칙'에서 홍의원은 "역대 정권의 경험을 보면, 통일 문제를 앞장세울 때일수록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가곤 했다."고 말한다.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던 이명박 정권,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정권 모두 통일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 진전된 건 없었다. 두 정권은 오히려 '5ㆍ24 조치',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교류를 끊어버렸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에 가장 힘을 쏟은 대통령 김대중. 그는 오히려 재임기간 통일을 가장 적게 언급한 대통령이라고 한다. 통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남북 화해와 협력, 공존에 대해 주로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이라고 통일을 바라지 않았을까. 실행까지 먼 통일을 주장해서 분란을 만드는 것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워지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서였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살면서 자유롭게 교류하고 왕래하면 그게 사실상의 통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문 특보와 홍의원이 대담을 시작한 지난해는 한반도 위기설이 가장 크게 대두됐던 해였다. 북한은 문재인 정권 출범 5일 만에 화성 12형 미사일을 발사했고 한 달 만에 4차례에 걸쳐 중거리 탄도 미사일 북극성 2형 등을 쐈다. 8월에는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과 북한의 괌 위협이 있었다. 9월에는 6차 핵실험, 11월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5형 발사 후 '핵 무력 완성' 선언에까지 이르렀다. 외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 가능성을 언급했다. 불과 반 년 전 일이다.

올해 들어 상황이 급격하게 반전됐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에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을 파견했다. 김영남 최고인민위 상임위원장, 김여정 부부장이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들고 왔다. 이는 4ㆍ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6ㆍ12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전쟁 위기까지 치닫던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세상이 확 변해버렸다.

문 특보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군사학 논고'를 쓴 로마 시대 전략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금언을 소개하면서 이 같은 사고가 냉전시대를 지배했고 "남북은 대표적 희생자"라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평화를 위해서는 강한 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알고 있다. 일견 타당한 말이지만 강한 안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양국의 군비경쟁은 남한의 첨단 무기들과 북한의 핵까지 이르면서 강한 안보를 넘어 남북이 공멸할 수 있는 전력이 됐다. 문 특보는 이제 바뀐 평화의 규칙으로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4ㆍ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6ㆍ12 북미 정상회담으로 열린 대화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포로ㆍ유해 송환, 군사훈련 연기와 같은 상대국 맞춤형 조치들을 통해 평화에 한발 한발 다가가자는 얘기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왼쪽)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왼쪽)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간 남북관계는 2차례의 정상회담 6ㆍ15, 10ㆍ4 공동선언 등 성과가 있음에도 "100이 아니면 0과 다름없다."는 반발에 발목 잡혀 다시 원위치로(혹은 더 나쁘게) 돌아오곤 했다. 이번에도 그러한 시도가 없는 게 아니다. 북미정상회담 후 미국과 국내 보수언론들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가 빠졌으니 실패한 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문 특보는 "이번엔 북미가 합의한 비핵화는 폐기뿐 아니라 앞으로 안 만들겠다는 얘기로 CVID보다 더 상위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바랐던 건 북한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아오라는 것이지 비핵화 협상을 하라는 게 아니었다며 전쟁 위협이 실제로 감소해도 합의 자체가 전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비핵화 진척이 더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불과 5주전이다. 남북정상회담까지 가더라도 석 달도 채 안됐다. 핵전문가들은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는데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묻고 싶다. 정말로 비핵화가 더뎌서 그렇게 초조한 것인가.

문 특보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간 남북관계에 냉소주의가 너무 많았습니다. 냉소주의에서 벗어나서 평화 통일을 향하는 길에 시민들 스스로가 하나의 참여자, 행위자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의 새로운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집시다."

평화의 규칙 / 문정인, 홍익표, 김치관 지음 / 바틀비 / 1만6000원

[남산딸깍발이] 협상은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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