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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 쉼표 하나까지 카뮈를 느끼다

최종수정 2018.06.29 10:55 기사입력 2018.06.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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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읽은 이방인, 정말 카뮈의 생각 담은 것일까…"기존에 읽었던 이방인은 오역" 이정서의 이방인 개정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Aujourd'hui, maman est morte.'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압축적이면서도 강렬한 언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로 그 문장이다. 이를 한국어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늘(Aujourd'hui) 뒤의 쉼표를 살려야 할까. maman은 한국어로 엄마로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어머니로 해석해야 할까.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몬도비에서 태어난 카뮈. 앙드레 말로를 문학적 스승으로 여긴 그는 작가, 기자, 극단 경영자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이방인은 1942년 나온 카뮈의 첫 소설이다. 1957년 카뮈는 이방인으로 역대 최연소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책이 처음 나온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진 = 알베르 카뮈

사진 = 알베르 카뮈



불어로 쓴 이방인을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을까. "기존에 읽었던 이방인은 오역이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정서는 2014년 새로운 이방인을 내놓으며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다.

한국불어불문학회장을 지낸 김화영 전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겨냥한 직격탄이었다. 이정선의 폭탄선언은 문학계와 번역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수많은 독자를 향해 당신이 읽었던 이방인은 정말 카뮈의 생각을 담았다고 생각하는지 되묻는 행동이었다.
김화영은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될 정도로 학계에서 권위를 지닌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김화영이 번역한 이방인을 읽고 카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카뮈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감각적인 터치를 제대로 담아냈을 것이란 '믿음'이 그 바탕이었다. 불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문학으로 인도하는 지침서였다.

그런 김화영의 번역을 혹평했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4년이 흐른 이후 이정서는 이방인 개정판을 내놓았다. 새움출판사는 본문 내용 중심의 이방인 보급판과 '역자노트' 내용을 담은 하드커버 한정판 등 2종의 이방인을 동시에 출간했다.

이정서는 4년 전 자신의 주장을 뒤집은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역 논란이 벌어진 이후 김화영의 이방인이 오히려 많이 개정됐다는 게 이정서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정서가 개정판을 내놓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번역은 작가가 쓴 그대로의 서술 구조를 반드시 따라줄 때라야만 원래의 의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다." 이번 개정판은 카뮈의 문장을 쉼표 하나 놓치지 않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이정서의 개정판은 논란의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논란의 시작이다.

논란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방인의 첫 문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의 국내 번역은 이방인 첫 문장을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이휘영 번역).'로 해석했다. 카뮈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김화영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번역해 주목받았다.

엄마라는 호칭은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장례식에서 겪은 장면, 훗날 살인자로 법정에 서게 된 상황에 이르기까지 소설 전반에 대한 내용의 해석을 결정하는 포인트다. 이정서는 김화영이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번역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엄마 뒤의 쉼표를 뺀 채 번역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확한 번역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정서는 미국에서도 엄마 뒤의 쉼표를 살려야 카뮈의 의도를 살릴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쉼표 하나의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원작의 진정한 의미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게 이정서의 판단이다.
[남산 딸깍발이] 쉼표 하나까지 카뮈를 느끼다


김화영과 이정서의 이방인은 문장의 해석 자체가 완전히 다른 부분도 있다. "네년이 나를 골려 먹으려고 했겠다. 나를 골려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지."라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는 뫼르소 친구인 레몽이 여자친구와 다투는 과정에서 내뱉은 발언에 대한 김화영의 번역 내용이다.

이정서는 불어 문장 중 Tu를 '네년'이라고 해석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정서는 이러한 해석이 나온 이유에 대해 레몽의 행위를 단지 폭력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화영은 이후 개정판에서 "넌 날 무시했어, 넌 날 무시했어, 나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지."라는 내용으로 고쳤다.

하지만 이정서의 해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정서는 "당신이 그리웠어, 당신이 그리웠어. 내가 당신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려 줄게."라는 내용으로 번역했다.

이는 카뮈의 이방인이 번역가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정서는 이방인 불어 원문이 영문으로 해석되는 과정에서 '사족'이 첨가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수정되지 않으면서 이방인의 잘못된 한글 번역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이정서와 김화영의 이방인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학계 거물의 권위에 도전한 이정서의 행동을 놓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이방인을 둘러싼 논쟁의 지점은 견해를 달리할 수 있지만 번역에 대한 이정서의 소신과 철학은 곱씹어볼 만하다.

"번역은 오묘한 세계다. 한 문장, 한 단어의 의미를 어찌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번역에 답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떠한 문장이고 작가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썼고, 번역은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는 지난한 과정이다."

이정서의 주장은 고인 물과도 같았던 학계의 기존 '카르텔'을 송두리째 흔드는 도전장이다.

류정민 건설부동산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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