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있기 열흘 전, 6월22일 미국 패서디나에 있는 로즈볼 경기장에서는 미국과 콜롬비아의 미국월드컵 A조 리그 경기가 열렸다. 미국은 1차전에서 스위스와 1-1로 비겼고, 콜롬비아는 루마니아에 1-3으로 졌기 때문에 토너먼트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이겨야 했다. 콜롬비아 대표 에스코바르는 스물일곱, 전성기였다.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마약 조직인 '메데인카르텔'은 "선수들이 귀국하자마자 죽이겠다"고 공언했다. 콜롬비아 선수들은 두려운 나머지 귀국을 꺼렸고,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감독은 에콰도르로 피신했다. 그러나 에스코바르는 속죄하는 심정으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목숨을 잃기 하루 전, 에스코바르는 "자책골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의 고백은 예언, 아니 유언이 됐다. 에스코바르의 여자친구는 범인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자살골에 감사한다'라며 빈정거렸다고 증언했다. 다음 날 검거된 범인의 이름은 움베르토 무뇨스 카스트로. 전직 경호원 출신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일본과의 경기에서 시작한 지 3분 만에 퇴장당하며 페널티킥까지 내줘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콜롬비아 대표팀 선수 카를로스 산체스가 살해 협박을 받았다는 소식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끔찍한 글을 올린 사람도 있다. "콜롬비아에 돌아오지 마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24시간 안에 가족을 대피시키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포악하고도 어리석다. 분열과 증오를 퍼뜨리는 병균이여!
축구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나라를 대표해 싸우는 대표 선수들의 책임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축구가 아무리 중요해도 승부와 목숨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늘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고 경기 자체를 즐기자'라고 다짐하지만 대회가 시작되고 나면 모두 공염불이 된다. 4년에 한 번 축구를 보는 사람들도 평생을 바친 선수와 지도자를 단죄하려 든다.
돌아보자. 인격의 측면에서, 우리 가운데 카스트로 뺨칠 자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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