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TV를 켰다. 대한민국과 스웨덴 전. 날렵한 몸을 날려 여러 번 공을 막아낸 뛰어난 수문장 조현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가대표가 경기에 졌다. 전반에 잘 버티어 냈으나 후반에 비디오판독(VAR)으로 페널티킥(PK)을 허용, 결론은 1:0, 90분 축제가 막을 내렸다. 수많은 집에서 닭뼈와 빈 맥줏잔과 실망이 남은 여름밤을 채웠으리라. 축구 좋아하는 내 제자의 아들은 "다신 축구 안 볼 것이고 축구 이야기도 안 하고 학교서 축구도 안 하고 심지어 족구도 안 하고(족구는 무슨 죄?)"라며, 태블릿서 축구게임도 지우고 퉁퉁 부은 눈으로 잠이 들었다고 한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성공은 성공해보지 못한 이에게만/가장 달콤하게 여겨지는 법/꿀맛을 제대로 알려면/가장 극심한 갈증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갈증의 시간 없이 성공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는 뜻. 지금은 해설을 하는 안정환 선수는 '4년이 평생'이라는 말을 했다. 월드컵에서 뛰는 그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한 지난한 기다림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극심한 갈증의 시간이며 그 인내가 다음의 성공에 큰 의미를 준다.
월드컵이 4년에 한 번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매일 하루를 산다. 4년 만의 월드컵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선수든,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든, 우리는 매일 어떤 것을 향해 간다. 그 지향은 높고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깊고 평평한 길이다. 한 골을 위해 수천 수만 번의 훈련이 있듯,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길을 걷는 순례자로서 걸어가는 그 하루가 중요하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속리산의 평평한 길을 통해 들려준 이는 나희덕 시인이었다.
축제는 짧아서 좋다. 축제가 끝난 빈 광장을 생각한다. 다시 차가 오가고 출근하는 시민들이 서 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또 다른 축제를 위한 노력들로 채워진다. 작은 실수로 울고 작은 성취로 웃는다. 간밤에 울다 잠든 아이는 다시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갈 것이다. 4년도 평생, 하루도 평생. 무언가를 향한 기다림과 성실한 땀으로 채울 수 있는 이 하루가 고맙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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