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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국민의 딸, 헬조선의 주범

최종수정 2018.05.03 16:27 기사입력 2018.05.0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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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을상 논변과소통 대표

류을상 논변과소통 대표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물벼락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며칠 전 그녀가 유리컵과 물 투척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녹음기 틀 듯 되풀이한 답변이다.

질문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혀를 밀어 입술을 통해 기계적으로 재생되는 그녀의 음성을 접하는 순간 난 어리둥절과 함께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심려를 끼쳤다니! 도대체 누구를 걱정케하고 염려케했단 이야긴가.

전후 맥락을 보아 최소한 취재진, 넓게는 다수 일반인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이야기같긴 한데, 번짓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답변이다. 아마도 이러 저러한 여러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맞대 고르고 고른 답변일텐데, 이건 주제 파악이 전혀 안된 무개념의 답변이다. 도대체 조현민의 발성이 어떤 면에서 주제파악에서 벗어났고 무개념이라는 이야기인가.

다수 일반인에게 심려를, 다시 말해 걱정과 염려를 끼칠 수 있는 이는 다수 일반인(국민이라고 하자)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딸' 정도는 되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김연아나 이상화가 경기를 앞두고 감기에 걸렸거나 부상을 당했다면 국민들은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런데 조현민은 우리의 조현민도 아니고 우리의 딸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의 딸처럼 구는 것은 질 낮은 응석에 불과하다. 조현민은 그저 조아무개의 손녀이고 딸일 뿐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4일 광화문에 모여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을 주장하는 촛불 집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이다. 직원들로 구성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서 직원들은 조 회장 일가 및 경영진의 퇴진을 촉구하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총수 일가를 비판하는 가사로 개사한 노래도 함께 부른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집회에서 직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벤데타 가면을 착용하기로 했다는 점. 직원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재벌 총수 일가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조현민 등 대한항공 총수 일가 3남매는 총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입사 3~6년만에 임원에 오른 초고속 승진을 했다. 어찌 대한항공뿐이겠는가. 재벌가의 갑질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건 결국 '회사는 내 것'이라는 비뚤어진 인식 때문이다. 조 전무의 이번 물벼락질은 그녀가 국민에게 걱정과 염려를 끼친 해프닝도 아니고, 비뚤어진 심성 문제도 아니다. 능력도 자질도 안 된 인사가 누구의 딸, 누구의 손녀라는 이유로 기업 경영에 나서는 묻지마식 '경영 세습'이 문제의 핵심이고, 헬 조선의 주범이라는 이야기이다.

헬 조선의 실상 가운데 하나를 보자. 조선시대 경국대전에서는 재가한 여자의 아들과 손자는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어떤 관직에도 임용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고 한다. 남편과 사별로 과부가 된 여인이 중매 없이 재가 한 경우에는 '스스로 시집간 죄'라는 해괴한 이유로 처벌하고 이혼시켰다. 상대가 된 남성이나 재혼한 남성에 대한 처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같은 경우임에도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따라 확연히 다르게 취급됐다는 이야기이다.

누구의 아들로 태어났는지, 누구의 딸로 태어났는지가 특권이 되는 세상은 이땅이 헬 조선으로 회귀했다는 선언이자 폭거이다. "경영권까지 물려준다고요? 운좋게 능력있는 부모를 만났다면 그 덕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배우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재벌 2ㆍ3세의 경영세습은 경제민주화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청와대 청원에 올라온 글이다.

류을상 논변과소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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