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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눈물

최종수정 2018.04.13 09:13 기사입력 2018.04.1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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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실러(Friedrich von Schillerㆍ1759-1805)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4악장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쓴 사람이다. 작가이자 철학자로서 괴테의 친구였다. 바이마르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선 동상이 있다. 실러는 칸트 미학의 비판적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주제는 선명하다. 나는 칸트를 읽고 해결하지 못한 의문을 실러의 글을 통해 해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는 '비극예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대중이 현실의 불행 앞에서 만족을 느끼는 두 가지 예를 제시한다. 그들은 침몰하는 배를 안전한 곳에서 바라보며 충격과 함께 즐거움을 느낀다. 범죄자를 죽이는 처형장에 몰려드는 이유는 정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범죄자가 고통 받는 꼴을 보고 싶어서다. 보지 않으려는 사람은 호기심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지나칠 정도로 매정한 언술이다.

하지만 그는 '숭고한 것에 대하여'에서 자세를 바꾼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 즐거울 수 없으며 그 불행 앞에서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썼다. 그는 연민이란 어쩔 수 없는 본성의 작용이라고 생각했다. 실러는 여기서 비극의 미학으로 나아간다. 비극은 인간의 이중적 본성을 드러내며 격정적인 동시에 숭고해야 한다. 고통을 극복하는 도덕성의 구현은 비극의 최종 목표다.(김상현)

예술로서 비극을 바라보는 관객은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주장한 이론이다. 관객은 극 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감정이입해 비극에 참여한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나?', '내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인식이 공존한다. 갈등이 증폭돼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갈등이 해소되면 관객은 '정화'를 경험한다. (김정희) 이때 배출되는 정화의 부산물이 '눈물'이다.

연민과 공포를 중국식으로 이해하면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측은지심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선한 마음이요, 불인지심은 남의 불행을 마음 편히 보지 못하는 마음이다. 둘 다 인간이면 누구나 타고나는 본성이다. 그러기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동정하고,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기어코 구해내는 것이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못 박고, 이 생각은 인의예지로 나아간다.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이 계절. 4월은 어김없이 돌아와 우리 앞에 섰다. 우리는 지난 3일 제주의 원혼을 위로하였고, 다가오는 월요일에는 봄꽃처럼 스러져간 어린 넋 앞에 고개 숙여야 한다. 공포와 비극이 현실이었을 그 시간에 우리는 안전한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가. 그 위태로운 시간 위에 우리는 사람의 혼으로 직립했던가. 그 날로부터 어언 4년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팽목항에서는 선명한 통증이 샛노란 리본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나부끼고, 세월호가 드러누운 목포 신항에는 돌아오지 못한 다섯 혼백의 흐느낌이 바람이 되어 맴돈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마치지 않았다. 우리 내면의 어느 자리에 인간의 맥박이 고동치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눈물이, 덧없는 눈물이 절망의 심연에서 샘솟아 가슴을 치밀고 눈에 고인다….' (테니슨)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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