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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기적에 대하여

최종수정 2018.03.22 11:45 기사입력 2018.03.2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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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파라아이스하키팀의 멘탈코치로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한국은 파라아이스하키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을 땄다. 3, 4위 결정전에서 이태리와 붙어 동메달을 딴 것이다. 원래 대표팀의 목표는 결승전에서 캐나다 혹은 미국과 붙어 금메달을 따는 거였다. 객관적인 전력차이를 감안하면 불가능에 가깝지만 목표는 확고했다. 선수들과 처음 만난 날 함께 세웠던 목표다. 세계 1위 캐나다와 2위인 미국을 연달아 이기고 금메달을 딴다는 건 두 번의 기적을 기대하는 거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미국과 캐나다에게 모두 크게 졌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기적은 여러 번 일어났다. 예선 2차전인 체코와의 경기에서 2:2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해 13초 만에 아이스링크의 메시라 불리는 정승환 선수가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동메달 결정전에서 3 피리어드 막바지까지 살얼음판 같은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가 정승환 선수의 패스를 받아 장동신 선수가 천금 같은 결승골을 넣었을 때. 경기종료 10초를 남기고 사력을 다해 몸을 던지는 선수들을 향해 강릉하키센터를 꽉 메운 관중들이 오, 사, 삼, 이, 일, 카운트다운을 할 때. 그리고 태극기를 링크 한 가운데 펼치고 모든 선수들과 감독, 스텝이 둘러 서 반주 없는 애국가를 목 놓아 부를 때. 돌아보니 매 순간 수많은 기적들이 가득했다. 강릉하키센터가 관중들로 가득차고 지상파 3사가 실시간으로 경기를 중계한 것도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링크 위에서 경기에 임하는 선수만 기적을 만드는 게 아니다. 경기장 밖에도 기적을 만드는 선수가 있다.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는 모두 열일곱 명. 매 경기 무장을 하고 링크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열다섯이다. 두 명의 선수는 정장을 하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선수들에겐 일시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고통스럽지만 팀을 위해 견뎌야 할 시간. 대개 경기 직전 감독이 결정해 선수들에게 통보한다.

예선 첫 경기인 일본전에선 최광혁 선수와 김대중 선수의 이름이 불렸다. 탈북인 출신 국가대표로 알려진 최광혁 선수는 그 날이 마침 그의 서른한 번째 생일이었다. 너무 뛰고 싶은 경기였지만 눈물을 삼키고 경기를 지켜봤다. 대표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김대중 선수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두 번째 체코전에서는 베테랑 이해만 선수와 신인 이지훈 선수가 빠졌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직원인 이해만 선수는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 직장까지 쉬고 있다. 이해만 과장이 패럴림픽에서 뛰는 모습을 보겠다고 달려 온 체육회 동료직원들 보기가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지훈 선수는 장갑차 전복 사고를 군복무 중 두 다리를 잃었다. 사고 후 나라가 원망스러워 한동안 태극기를 보기도 싫어하던 그가 이제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뿌듯해 한다. 그런 그도 묵묵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미국전에서는 부주장 장종호 선수가 최종 열다섯 명에 들지 못했다. 나이 많은 선배들과 어린 선수들 사이의 가교역할을 맡아 다독이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팀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충격도 컸다. 그가 엔트리에서 빠진 날은 아들 나음이의 첫 생일날이었다. 대표팀 막내 최시우 선수는 마지막 동메달 결정전에서 제외됐다. 감독의 통보를 듣고 이럴 줄 알았으면 이전 경기에서 모든 걸 쏟아 부을 껄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치악산 멧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최시우 선수가 동메달을 따고 다른 선수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엉엉 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당연히 정장을 입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적을 이룬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걸 기억해야 기적이 온전해진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ㆍ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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