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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물소리 들어보았는가

최종수정 2017.07.04 16:40 기사입력 2017.07.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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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는 그냥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험준한 바위에 부딪치고 밟히는 칼돌에 찔리고 베이며 내는 소리다. 막아선 벼랑을 치받아 돌고 턱없이 내려앉는 바닥으로 미끄러져 낙하하며 소스라치고 주저앉는 소리다.

뚝뚝뚝 똑똑똑 또록또록 주룩주룩, 이런 물소리는 물의 영혼이 한 방울 한 방울씩 제 몸을 수제비처럼 떼어내 어느 바닥엔가 머리를 박는 소리다. 모든 물소리는 비명의 소리요 탄식의 소리요 고뇌의 탄성이다.

아무런 장애도 없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직진하는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물소리를 듣는 귀는 물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물이 울며 제 몸을 꺾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물소리 들릴 땐 함부로 듣지 마라. 귀를 열고 마음의 옷깃을 여미라.

[낱말의습격]물소리 들어보았는가


▶ 그래도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고 시인 김승희가 말했을 때, 그 섬이 내게로 헤엄쳐 왔다.

모든 사람들이 그래,에서 멈춘 곳에 물거품이 일고 대륙붕이 제몸을 돋워 그래도,라는 섬이 되었다. 그래도,는 포기하지 않는 섬, 그래도,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흐르지 않는 섬, 그래도,는 현실의 파도에 매몰되지 않는 섬, 그래도,는 거세게 몰아친 폭풍후 그 다음에도 다시 멀쩡히 돋아나는 섬이었다. 그래도,는 어디에 있는가. 제 몸을 천길이나 감춘 그 물밑에 진짜 섬이 있다. 돋아난 것이 섬이 아니라 감춘 것이 섬이다. 돋아나게 하기 위해, 수많은 물을 먹고 견디는 물 먹는 하마가 바로 그래도,이다.

▶ 하여간

하여간(澗)이란 산골짝의 물줄기도 있다.

상황이 이렇든 저렇든 가야할 길은 꼭 가고마는 물이 하여간이다. 칼돌에 베이고 벼랑에 부딪치고 천길을 낙하하더라도 하여간 가는 것이 그 물이다. 하여간이 되어야 그래도까지 간다.

▶ 마침내

마침내(川)라는 개천도 있다.

모두가 그만 가자고 말리고 이제는 끝이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고개 한번 더 들어 벼랑에서 백척간두진일보하여 허공으로 승천해버리는 물이 있다. 인간의 힘으로 노력하고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지만 인간이 힘을 놓은 다음에도 약진하는 그 몸부림이 있다. 마침내가 되어야 그래도까지 간다.

▶ 하지만

하지만(灣)이라는 물굽이도 있다.

상황이 이러이러해서 결코 안된다는 벼랑에 부딪쳤다. 그쯤에서 쉬자는 의견이 대다수(水)를 이뤘다. 그때 문득 하지만,이 나타난다.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진이 빠지고 모두가 맥이 다했지만 딱 한번만 더 해보자는 것이다. 속는 셈 치고 나를 따라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죽을 수(水)도 있다. 하지만, 살 수(水)도 있는 것이다.

▶ 그래서

그래서(嶼)라는 섬도 있다.

그래도,라는 섬 뒤에 있는 섬이 그래서이다. 역접(逆接)으로 물길을 뒤집은 그래도도 놀랍지만, 그 뒤집은 물길의 힘을 다시 추스려 순접(順接)으로 나아가는 그래서도 꼭 필요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망망대해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은 그냥 맨바다가 아니라, 그래도라는 섬 너머에 그래서라는 섬이 형제처럼 떠있는 비경이다. 그래서와 그래도는 물밑에서 서로를 기대면서 물위에서 서로를 기껍고도 고마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삶은 여전히 살 만한지 모른다.

세상을 헤쳐가는 비밀이 물에 있음을 가장 먼저 절실하게 깨달은 사람은 노자이지만, 굳이 노자에게까지 갈 것도 없다. 모든 물이 스승이다. 모든 물이 빚어낸 사유와 풍경과 스토리들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큰 경전이다. 요즘같은 장마철엔 물처럼 사는지 돌이켜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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