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AD]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낱말의습격]깊은 심심함

최종수정 2017.06.29 04:01 기사입력 2017.06.28 09:28

댓글쓰기

규제에 의해 움직이던 사회가 생산성을 중시하는 성과사회로 바뀌면서, 인간은 제 몸과 제 정신 그리고 제 삶 전부를 경영하는 피곤한 경영자가 되었다.

자기를 착취하고 학대하며 끝없이 목표를 들이대며 나아가라고 명령하는 광기의 오너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 좋은 삶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무엇이 좋은 삶인지를 까먹은 것이다. 좋은 삶은 내가 무리를 압도하고 빛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고 성취하여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놓쳤다.

아무리 얻고 또 얻어도 행복해지지 않는 성과사회는, 이제 피로사회로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사회. 과잉활동으로 모두가 넉다운이 되어가는 사회.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전에 존재하던 '깊은 심심함(In-depth boredom)'이라고 한다. 발터 벤야민의 책 '피로사회(Fatigue society)'에 등장하는 용어다. 그는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멋지게 표현했다. 단순한 분주함은 새로운 것을 낳지 못하며,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본질과 만나게 하는 텅빈 시간. 이걸 잊어버린 인간은 지금 피로에 쩔어있다. 소리보다 더 깊은 정적도 잃어버렸고, 빛보다 더 강렬한 어둠도 만나지 못한다.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며, 아무 말 없이 깊이 흐뭇해지는 관계도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의 쓸모를 추구하던 그들은, 세상 모두를 쓸모 없이 만들어버렸다는 성찰. 과장은 있지만, 귀담아 들을 만한 충고임에 틀림없다. 깊은 심심함...나도 지금 그게 그립다.

예능프로그램의 귀재인 나영석 PD(일박이일,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알쓸신잡 등 제작).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가 최근 페북에 올린 영어 프리젠테이션(칸 국제광고제 프리젠테이션)의 제목은 '심심함의 힘(The Power of Boredom)'이었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