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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어처구니는 어디로 갔을까

최종수정 2017.06.23 16:18 기사입력 2017.06.23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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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자루, 지붕 위의 토용, 거대한 열차? …잃어버린 어처구니를 찾아서

▶ 노래에는 어이가 있지만


크레용팝의 노래 '어이'를 좋아한다. 마음에 주눅이 들 때 이 노래 한 곡이면 힐링이 될 때가 있다. 그 어이라는 뜻은 뭘까. 아마도 노래를 일으키는 흥이나 추임새같은 것일지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를 가볍게 부를 때 쓰는 그 호칭을 빌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모르는 누구에게, 혹은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은 누군가에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만큼 가볍게 건네는 익명의 호명이다.

크레용팝 '어이' 뮤직비디오 중에서.(출처=유튜브). 최근 멤버인 소율이 문희준과 결혼하면서 해체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소속사에선 남은 멤버들로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크레용팝 '어이' 뮤직비디오 중에서.(출처=유튜브). 최근 멤버인 소율이 문희준과 결혼하면서 해체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소속사에선 남은 멤버들로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노래에는 '어이'가 있지만, 어이라는 말은 대개 없는 상태로만 쓰인다. 즉, 어이 없네,라는 말은 흔히 쓰지만 어이 있네,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의 가벼운 표현으로는 '어이상실'이라고도 한다. 어이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누구나 어이를 말하지만 아무도 어이의 뜻을 콕 집어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낱말이 있다는 것이 신통하다.

▶ 손잡이 없는 맷돌, 지붕 위의 인형?
'어이'에 대해 확실히 어원을 말해주는 분을 아직까지 못 봤다. 다만 어처구니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말만 할 뿐이다. 어처구니에 대해서는 설명들이 좀 있다. 바윗돌을 부수는 농기계의 쇠로 된 머리부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맷돌을 돌리는 나무막대로 된 손잡이를 말하기도 한다. 또 기와지붕에 있는 사람과 동물 모양의 토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세 가지는 상당히 다른 것들인데 이것들을 모두 어처구니라 부른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은, 막상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그 중요한 물건이 없어서 낭패를 보는 상황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럴 듯 하지만, 어처구니는 꼭 뭔가가 없어서 생기는 황당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몹시 황당하거나 억울한 경우를 만나서, 조리있게 설명해내려는 마음은 있지만 말은 잘 나오지 않아 가슴이 답답한 상황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사람의 언행에 어처구니가 없다고 느끼는 것을 어찌 맷돌 자루 없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라 하겠는가. 어처구니를 맷돌 자루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처구니라는 말의 현실 속의 뉘앙스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어이없는 해석이다.

▶ 한때는 '열차'가 어처구니였다

어처구니는 19세기 말에는 '어쳐군이'라는 말로 쓰였다. '돈을 주조하는 큰 기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키가 큰 사람'을 뜻하기도 했던 말이다. 이 말은 증기기관차(열차)가 들어오면서, 그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의미는 처음보는 엄청나게 큰 물건이란 '심정적 놀라움'을 담은 말이다. 공장의 큰 굴뚝을 보고 '어처구니 굴뚝'이란 말도 썼다.

이 어처구니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요긴한 무엇'이 아니고 '놀라울만큼 크고 대단한 것'이다. 지붕 위의 토우 인형이나 맷돌자루는 크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은 만큼, 이 말의 전혀 다른 용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거대한 어처구니'는 사어(死語)가 되었다. 어처구니없다라는 표현에 쓰는 어처구니와는 동음이의로, 지금은 쓰이지도 않고 두 가지는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어처구니를 '어처구니없다'의 사라진 주인공으로 풀어놓은 이들이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렇게 행방불명된 낱말의 '수사' 발표를 했겠느냐 마는, 그것이 실종된 어처구니는 아니다.

▶ 어처구니가 뭔지도 모르는데, 그게 없다?

어처구니가 언제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라지고 '어처구니없다'만 남았다. 어처구니가 뭔지도 모르는데, 그게 없다는 말이 엄연히 있는 것이다. 또 어처구니없다는 상당히 비슷한 케이스로 쓰일 수 있는 '축약어' 비슷한 표현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어이없다'가 그것이다. 어처구니-어이의 형제는 있는데, 그 부모는 없다. 낱말 두 가지가 동시에 고아인 셈인데, 태생의 비밀은 전혀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이다.

어처구니와 어이가 같은 말이라면 '어ㅊ'어구니와 '어ㅊ'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어구니'가 접미사로 기분을 강조하는 보조어라고 보는 것이다. 볼따구니(볼ㄸ + 아구니), 철따구니(철ㄸ + 아구니)라는 용례가 있다. 이중에 볼과 철은 단독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것에 붙은 접미사들은 대개 비속어가 지닌 생생한 실감의 뉘앙스를 더한 것이다. '어ㅊ'은 무엇인가. 지역사투리로 '어처구니없다'를 '얼척없다' 혹은 '얼처구니없다'로 쓰는 것을 볼 때 '얼척'이 줄어든 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얼척 - 어척 - 어ㅊ'으로 바뀌어왔을 가능성이 많다.

▶ 어리둥절과 어이없음


'어ㅊ'이 얼척이라면, '얼+척'으로 나눌 수 있는 말이 된다. 얼은 정신의 줏대를 가리키는 고유어다. '민족의 얼'할 때 쓰는 고상한 말이기도 한데, 얼 나가다, 얼 빠지다, 얼을 빼다, 얼 치다(정신을 잃다) 따위의 말에 남아있다. '어리둥절'이란 말도 있는데, 이것은 '얼이 동절(動絶)'이나 '얼이 돈절(敦絶)' '얼이 두절(杜絶)' 따위로 나뉘어 쓰던 말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어처구니없다'와 '어이없다'에 숨어있는 말이 '얼'이라면, 이 말에 대한 설명이 쉬워진다. 이 두 말은 '얼'이 빠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척'이 뭔지는 여전히 해명이 쉽지 않다. 그런데 기척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있는 줄을 짐작하여 알 만한 소리나 기색을 말한다. 기척은 '기(氣)+척'으로 나눠질 수 있는 말이다. 즉 어떤 기운이 있는 자취나 낌새다. 그렇다면 '척'은 자취나 낌새를 뜻한 접미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정신의 줏대가 낌새없이 사라진 꼴

이제 얼척을 생각해보자. 얼이 있는 자취나 낌새를 뜻하는 말이 될 수 있다. 더 풀어보면 정신의 줏대가 있는 자취나 낌새가 얼척이다. '어처구니없다'는 정신의 줏대가 있는 자취나 낌새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게 무슨 뜻인가. 너무나 황당하거나 가소롭거나 억울하거나 무리한 일을 당하여 정신의 줏대가 자취나 낌새도 없이 사라져버린 상황이란 의미다. 정확하게 그 의미나 뉘앙스, 용례들과 들어맞는 풀이가 된다. 얼이 사라져버렸으니 얼빠진 상태이며 넋나간 상황이며 '기가 막힌' 상황이다.

'척'이 아니라 '처'일수도 있다. 즉 '얼처'라는 표현이 '어ㅊ'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처'는 '처(處)'일 가능성이 크다. '얼처'는 '얼이 있을 곳' 혹은 '얼이 담길 곳'이다. 얼이 있을 곳에 없으니, 정신의 줏대가 가출한 상황이다. 어이상실의 개념과 딱 맞는 말이 된다.

▶ 얼빠짐과 어처구니없음의 차이

'어처구니가 없다' 혹은 '어이가 없다'라는 문장으로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둘다 홀로 명사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어처구니가 사라졌을 때만 그것의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기에, '없다'라는 말이 거의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말이 된 것이다. '얼빠진' '얼나간'이란 말들이 쓰이는 방식과 비슷한 셈이다.

'얼빠진'과 '얼나간'이란 말은, 대개 '얼'을 지닌 주체를 묘사하고 비판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다'는 그 얼을 빠져나가게한 대상에 대한 신랄한 지적을 담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을 직접 가리키진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인간'이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 인간'이거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인간'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즉 어처구니없는 것은 대개, 인간의 언행이나 인간사에 생겨난 곡절이나 맥락이다. 그걸 대하는 사람의 얼이 나가버린 상황이다.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고 어이없는 일을 겪으면서, 이 말을 처음 쓰고 그것을 고개 끄덕이며 따라 썼을 사람의 분통과 허탈과 슬픔을 짐작해보게 된다. 얼마나 속터지고 얼마나 분했으면! 사리분별이 헷갈리면서 정신줄을 놔버렸을까. 그간 스스로의 이성을 제어해왔을 정신의 줏대가 행불이라고 자진신고를 하게 됐을까. 오죽하면 말이다. 그에게 어처구니란 말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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