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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칼럼] 난민, 이민, 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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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을 이어 온 찬란한 로마제국은 어떻게 멸망했을까? 몽고나 이슬람 같은 강력한 외부 침략자와의 전쟁? 아니다. 다 알고 있듯이 로마의 멸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개하기 짝이 없었던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때문이었다. 프랑크족, 반달족, 서고트족, 동고트족, 롬바르드족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인종들의 집합체인 게르만족은 일찍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숲이나 발트해 주변에 흩어져 살던 바바리안, 즉 푸른 눈동자의 야만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자기네 문자도 없었고, 농사 짓는 법도 몰랐다. 문명화된 로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저급한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가급적 그들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을 쌓기도 하고, 들어오는 족족 잡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삼오오 꾸역꾸역 떼로 밀려들어오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조직적인 무리가 아니었다. 남부여대, 수레를 끌고 아이들을 태우고 부녀자와 노인들을 대동한 그야말로 상거지중의 상거지떼들이었다. 그러나 게 중에는 제법 출중한 자들도 있어 로마의 용병으로 뽑히기도 했고 로마의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기도 하고 뒤섞이기도 하면서 거대 제국의 안마당까지 들어간 게르만족은, 마침내 서기 475년 제국 로마의 마지막 황제를 폐함으로써 완전히 로마를 역사의 장에서 사라지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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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요즘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심상치가 않다. 브렉시트라 불리는 영국의 EU 탈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는 하나가 바로 외국 이민자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한 첫 번째 일이 불법 난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이른바 행정명령이었다. 난민을 포함해 이민이란 초원지대의 유목민들이 풀을 찾아가듯이 대체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지역에서 부유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민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이어져 온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세계화 이후 국경이 무너지면서 해마다 '잘 사는 안전지역'으로 떼로 몰려들던 난민은 시리아, 이라크 내전에 의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거기에다 아프리카에서 전쟁과 기아를 피해 해마다 지중해 죽음의 파도를 건너 유럽을 향해 개미떼처럼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지금 유럽을 떠도는 난민의 수는 약 60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숫자이다. 독일 하나만 해도 2020년까지 예상되는 난민의 수는 360만명이라고 한다. 가히 그들이 체감하는 공포심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골치 아픈 난민들이 속출하고 있는 아프리카나 중동은 일찍이 유럽인들이 식민지로 경영하던 곳이었다. 근대 유럽은 식민을 기반으로, 식민지의 수탈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영국은 일찍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랑했던 것처럼 세계도처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자기 나라 사람들을 그야말로 갖다 심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아이러니를 감추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식민은 이제 반대로 난민과 이민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때 장난삼아 사귀었던 가난한 집 처녀가 아이 업고 나타난 꼴과 같다. 지금 유럽의 어디에나 인종전시장처럼 다른 대륙에서 온 인종들로 넘쳐나고 있다. 거기에다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소말리아 등 미국과 유럽이 들쑤셔놓은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풍선효과처럼 터져나와 물밀듯이 유럽으로 밀려든다. 장차 유럽은 아이를 많이 낳는 이슬람권 난민들의 자손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연 이 민족대이동의 바람은 막아낼 수가 있을까? 없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그것이 불가능함을 가르쳐준다. 전쟁과 부의 불평등으로 거대한 유랑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제 뒤섞인 채 나갈 수 밖에 없다. 종교도 문화도 다른 이런 인간들 속에서 한동안 혼돈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테러는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고 인종간의 갈등과 종교간의 증오는 늘어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로마제국의 말기와 같은 드라마틱한 인류학적 대전환기에 서있는지 모른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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