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는 자기네 문자도 없었고, 농사 짓는 법도 몰랐다. 문명화된 로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저급한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가급적 그들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을 쌓기도 하고, 들어오는 족족 잡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삼오오 꾸역꾸역 떼로 밀려들어오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심상치가 않다. 브렉시트라 불리는 영국의 EU 탈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는 하나가 바로 외국 이민자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한 첫 번째 일이 불법 난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이른바 행정명령이었다. 난민을 포함해 이민이란 초원지대의 유목민들이 풀을 찾아가듯이 대체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지역에서 부유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민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이어져 온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세계화 이후 국경이 무너지면서 해마다 '잘 사는 안전지역'으로 떼로 몰려들던 난민은 시리아, 이라크 내전에 의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거기에다 아프리카에서 전쟁과 기아를 피해 해마다 지중해 죽음의 파도를 건너 유럽을 향해 개미떼처럼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지금 유럽을 떠도는 난민의 수는 약 60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숫자이다. 독일 하나만 해도 2020년까지 예상되는 난민의 수는 360만명이라고 한다. 가히 그들이 체감하는 공포심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아이러니를 감추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식민은 이제 반대로 난민과 이민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때 장난삼아 사귀었던 가난한 집 처녀가 아이 업고 나타난 꼴과 같다. 지금 유럽의 어디에나 인종전시장처럼 다른 대륙에서 온 인종들로 넘쳐나고 있다. 거기에다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소말리아 등 미국과 유럽이 들쑤셔놓은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풍선효과처럼 터져나와 물밀듯이 유럽으로 밀려든다. 장차 유럽은 아이를 많이 낳는 이슬람권 난민들의 자손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연 이 민족대이동의 바람은 막아낼 수가 있을까? 없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그것이 불가능함을 가르쳐준다. 전쟁과 부의 불평등으로 거대한 유랑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제 뒤섞인 채 나갈 수 밖에 없다. 종교도 문화도 다른 이런 인간들 속에서 한동안 혼돈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테러는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고 인종간의 갈등과 종교간의 증오는 늘어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로마제국의 말기와 같은 드라마틱한 인류학적 대전환기에 서있는지 모른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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