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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삼디와 쓰리디의 진짜 차이

최종수정 2017.04.07 04:04 기사입력 2017.04.0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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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곱씹기 - 김종인 대선출마 밝히며 현 지지율 1위 문재인을 비꼰 빌미 들여다보기

김종인 전의원이 5일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아무나 경영할 수 없다.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하다."

지난달 30일 sbs 경선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신재생 에너지, 삼디 프린트 또 인공지능 산업로봇 등 신성장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는 사람이 3D를 삼디라고 읽느냐는 힐난이 있었습니다. 김종인 후보는 그런 논란을 다시 끌어와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면서 스스로의 대선 출정에 눈길을 끌고자 했고, 일단 그 점에서는 살짝 성공한 듯 보입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사진=아시아경제 DB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사진=아시아경제 DB



3D를 삼디로 읽는 것이, 새롭게 바뀌는 문명의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한 어눌한 센스라는 주장일 겁니다. 쓰리디가 보편적인 '발음'으로 되어 있기에 약간 어색한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3D의 경우, dirty, difficult, dangerous의 앞 글자를 따서 썼던 다른 용례가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소득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근로자들이 꺼리는 업종을 지칭하는 말이었죠. 이때 대개 삼디라고 발음했습니다. 삼디업종은 제조업, 광업, 건축업 등 더럽고 어려우며 위험한 직종을 일컬었습니다.
세븐일레븐이 판매하는 3D프린터

세븐일레븐이 판매하는 3D프린터



문재인 후보가 말한 삼디 프린터의 경우 '쓰리디 프린터'라는 발음으로 통용되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최근의 급속한 글로벌화로 3을 '쓰리'로 읽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인 점도 있을 것입니다. 3차원(Three Dimensions)을 의미하는 3D의 경우, 3이 단순한 이니셜의 갯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열이나 순서를 가리키는 역할을 하기에 영어의 맥락을 살려 '쓰리'로 읽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쓰리디는 우리 사회와 삶의 변화를 반영한 발음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읽지 못한 상대후보를 가차없이 공격한 일은 일견 사소한 트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어휘력과 발화(發話)의 능력이 그 사람의 인식구조와 가치체계를 반영한다고 보는 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삼디로 읽는 것이 후진 발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어와 숫자가 결합할 때 숫자를 한자어 발음으로 읽는 일은 오랫동안의 관행이었죠.

전후 일본이나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나왔단 삼에스(3S) 정책은, 쿠데타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스포츠(Sports), 성(Sex), 영화(Screen)으로 눈 돌리게 하여 무마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담은 말이었습니다.

삼비(3B)는 광고전략에서 주목도를 높이기 쉬운 세 가지 피사체를 말하는데, 아기(Baby), 미녀(Beauty), 동물(Beast)를 가리킵니다.‘사비(4B)연필은 심이 무르고 색이 짙은 연필을 가리키는 등급인데, Black에서 나온 말이죠. 두뇌(head) ·마음(heart) ·손(hand) ·건강(health)의 이념을 가진 청소년단체는 1970년대 한국에도 크게 유행했는데, 사에이치(4H)라고 불렀지, 아무도 포에이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낱말의습격]삼디와 쓰리디의 진짜 차이


자연스럽게 영어로 읽히는 것도 있습니다. 넘버쓰리(number 3), 쓰리고(3Go) 같은 경우 말입니다. 워낙 일상화되어서 전체를 영어로 쓴다고 글로벌화가 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쓰리엠(3M)이란 기업을 아무도 삼엠이라 부르지는 않죠.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으로 사무용품, 의료용품, 보안제품을 만드는 회사인 3M은 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이란 긴 이름에서 이니셜을 딴 말입니다. 경기 차수를 가리키는 3R은 삼라운드라 부르지만 빅투(Big2)는 빅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숫자와 영어가 들어간 말의 경우, 숫자까지 영어로 읽는 경우가 많아진 건 사실입니다. LTE를 가리키는 빠른 속도의 무선전송 방식을 포지(4G)라고 부르는데 익숙해졌고 아파트의 전면 발코니쪽으로 배치된 공간의 숫자를 가리키는 베이도 4개일 경우 포베이(4Bay)라 일컫죠. 또 영어와 숫자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해 쓰는 '4u(For You)' 같은 말도 자주 쓰입니다.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소비성향은 대체로 쓰리에스로 표현합니다. 싱글(Single,독신), 안전(Safety), 자기만족(Self-satisfaction)이 그것인데, 전두환 시절의 ’삼에스‘와는 구분되는 발음입니다.

[낱말의습격]삼디와 쓰리디의 진짜 차이


삼에스와 스리에쓰가 ‘낱말의 기분’이 다른 것처럼, 삼디와 쓰리디 또한 그런 것 같습니다. 숫자와 영어가 결합된 말을 발음하는 오랜 관행은 숫자는 한자어 발음으로 읽고 영어는 영어로 읽는 것이었으나, 최근 들어 전체를 영어로 읽는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그 이행기에 생겨난 시비거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가 쓰리디 프린터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말 속에 굳이 영어를 남발하지 않고 보다 쉽게 말하려고 한 서비스 정신 쯤으로 이해해주는 것이 대범한 관점 아닐까요. 약간 우스꽝스럽고 올드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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