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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아이 울음소리 사라진 龍의 나라들

최종수정 2017.04.06 09:21 기사입력 2017.04.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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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전 주필

박명훈 전 주필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영광의 시대를 함께 한 옛 동지들이다. 1970~80년대엔 연 10%를 넘나드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세계는 '동아시아의 기적' 또는 '떠오르는 네 마리의 용'으로 불렀다.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이들의 압축 경제성장은 많은 개도국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잊혀진 듯 했던 이들의 이름이 지난달 나란히 언론에 올랐다. 영광의 재회는 아니었다. 동병상련의 그늘진 얼굴이었다. 병명은 초저출산율. 세계 224개국 중 출산율로 한국 220위, 홍콩 221위, 대만 222위, 싱가포르 224위. 어떻게 이렇게 바닥을 싹쓸이 하면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막다른 골목에서 만날 수 있을까.(223위 역시 동아시아의 마카오다. 미 중앙정보국(CIA) 월드 페이스북)

승천하는 용에게도 출산율 급락이라는 추락이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노령화와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이들에게 비견할만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출산율이 떨어져 고민하던 나라들도 대부분 한숨을 돌렸다. 그렇다면 고속성장과 수직적인 출산율의 낙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가 가족계획(아이 덜 낳기 운동)을 중단한 시기는 1995년이다. 2005년에는 저출산-고령화 기본법을 제정하고 지금까지 1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최근의 인구통계는 참담한 현실을 웅변한다. 지난 1월 출생아수는 3만5100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관련통계를 처음 작성한 2000년 1월 6만1200명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해 결혼건수는 28만 건. 이 역시 통계작성이후 최저다.

인구문제의 심각성은 국민 모두가 절감한다. 그런데도 갈수록 절벽에 몰린다. 고령화는 소득향상과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저출산은 다르다. 사회환경과 개인의지의 변화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100조원을 쏟은 저출산 대책이 겉돌고 있은 것은 뭔가 핵심을 찌르지 못한 데서 나온 필연적 결과가 아닐까.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은 출산장려에 집중됐다. 장려금 지급, 양육비 지원 확대, 관련시설 확충, 출산휴가 연장…. 대선 후보들이 인구대책이라 내놓은 답안도 대동소이하다. 그들의 머리(아니면 답안지를 작성해준 브레인의 머리)에 정부 대책을 넘어설만한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한층 심각한 문제는 그 같은 대책이 이미 실패했으며,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분명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취직이 힘들고, 집값이 비싸고,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 맡길 곳도 없고…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보다 훨씬 열악한 나라가 차고 넘치는데 어째서 출산율은 더 낮지 않은가. 네 마리 용이 공통적으로 초저출산율이란 재앙에 직면했다는 사실은 어떤 암시를 주는 듯 하다. 단기 고속성장이 가족형태와 청소년 인생관을 급격하게 바꿔놓고 세대간 동질성을 파괴하면서 문제가 비롯된 것은 아닐까. 사회문화적 충격파가 출산의 생태계까지 흔들어 놓은 진원지는 아닐까.

결혼은 필수에서 선택이 되었다. 결혼이 곧 출산은 아니다. 여성들은 일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외친다. 한 젊은이는 설문조사에서 "부자집 종 노릇할 아이를 왜 낳느냐"고 거칠게 말했다. 불과 10~20년 사이의 변화다. 압축성장에 따른 사회문화적 지각변동과 청년층의 사고 및 심리적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교과서적 처방에 매달려 돈을 쏟아 붓는다면, 초저출산 행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명훈 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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