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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니혼' 아닌 '니폰'…일본이 발음에 힘주는 까닭

최종수정 2017.04.02 04:00 기사입력 2017.04.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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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호의 비밀 - 안으로 힘을 가득 채워 '닛'이라 발음하고, 그 힘을 밖으로 방사하여 '뽄'?

일본은 오랫동안 '왜(倭)'라는 이름으로 불린 나라다. '왜'는 일본이란 나라의 국호라기 보다는 중국에서 건너온 특정한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한다. 즉 중국과 한반도 남쪽과 일본에 걸쳐 이동하며 존재했던 겨레붙이가 왜족이었다는 것. 그 왜족이 대거 거주하던 곳이 일본이었고, 그곳을 왜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일본이란 국호를 사용한 것은 7세기초로 잡는다. 당시 쇼토쿠태자( しょうとくたいし : 574-622)가 중국에 국서(외교편지)를 보냈는데 자신의 나라를 가리켜 일본(日本)이라 칭했다. 그 뜻은 '해가 떠오르는 나라(원뜻은 '해의 뿌리')'인데, 일본의 위치가 중국의 동쪽 해상이기에 해가 솟는 곳이라는 표현을 써서 상대 국가에 알기 쉽게 설명했다. 우리나라가 조선(朝鮮)이란 명칭을 지니게 된 것도, 중국의 동쪽이면서 아침이 밝아오는 고운 나라란 의미인 점을 감안하면, 유사한 위치 개념이 담긴 말이라 할 수 있다.

[낱말의습격]'니혼' 아닌 '니폰'…일본이 발음에 힘주는 까닭


그런데 '日本'이란 이름을 우리말로는 '일본'이라고 읽지만, 막상 그 해당 국가에선 하나로 통일해 읽지 않고 있다. 한자 표기는 같지만, '야마토'라고 읽기도 했고, '니혼', '니폰(닛뽄)' 으로 제각각 읽는다.

▶ 2개의'일본교(日本橋)'


일본에는 '일본교(日本橋)'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두 곳 있다.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데, 도쿄에 있는 다리는 '니혼바시'라 부르고 오사카에선 '니폰(닛뽄)바시'라 한다. 왜 그렇게 서로 다르게 읽는지에 대해선 명쾌한 설명이 없고 지역에서 생긴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만 말한다.
일본의 지폐에는 '니폰 긴코(NIPPON GINKO)'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ank of Japan)은 정식 명칭은 니폰 긴코임에 틀림없지만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은행을 '니혼 긴코'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헷갈리는 곳은 여기 뿐만이 아니다. 일본대학, 일본여자대학, 일본복지대학은 '니혼'이다. 일본체육대학, 일본의과대학, 일본치과대학,일본공업대학은 '닛뽄'이다.


2002년 게이단렌(經團連)과 닛케이렌(日經連)이 통합해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만들어졌다. 이때 일본의 발음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당시의 오쿠다총재가 '니폰'으로 결정한 바 있다.

[낱말의습격]'니혼' 아닌 '니폰'…일본이 발음에 힘주는 까닭



▶일본 국민들은 '니혼'을 애용


일본 국민들 여론은 어떨까. 일본방송협회(NHK)가 조사한 자료가 있다. 1963년에는 '니혼'이 45%, '니폰'이 42%였다. 1993년에는 '니혼'이 58%, '니폰'이 39%였다 30년간 니혼 발음이 꽤 늘어난 것이다. 1995년 NHK조사에서는, 나이가 높을수록 '니폰'을, 나이가 젊을수록 '니혼'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일본의 국립국어연구원 조사에선 일본국민의 80%가 '니혼'을 사용하며 스포츠 중계에선 '니폰'을 선호한다는 집계가 나왔다.

일본어 사전인 고지엔에선 '니폰으로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니혼이라 읽는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일본사회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니폰'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치인들도 그렇고 방송들도 최근 들어 부쩍 니폰이란 말을 즐겨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를 떠올려보자. 우리나라에선 국호를 풀네임인 '대한민국'으로 쓰는 유행이 일어났지만, 그 무렵 일본에는 '니폰'이라는 강한 명칭을 쓰는 붐이 있었다. 애국심과 내셔널리즘이 강해지면서 국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낱말의습격]'니혼' 아닌 '니폰'…일본이 발음에 힘주는 까닭


▶ 군국의 시절에 등장한 공식발음 '니폰'


니폰이란 말이 주류로 등장하는 배경을 보면 그런 인식이 추측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34년 일본 문부성은 니폰을 국가호칭 통일안으로 결정한다. 니폰이 이 때에 공식적 호칭으로 정리된 셈이다. 당시 글로벌한 명칭이었던 재팬이나 자퐁 같은 외래어 국호도 검토대상에 놓고 고심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한자를 일본 발음으로 읽은 니폰(Nippon)으로 정리했다. 왜 하필 니폰이었을까. 이 무렵은 일제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국가 야망을 확장해나가던 시절이다. 석간신문인 도쿄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 마이니치신문의 전신)은 1934년 3월 23일자로 이에 관한 해설을 실었다.

"문부성 내의 국어조사회에서는 내각과 외무성 요청에 자문하기 위해 조사를 계속해왔는데, 니혼으로 발음하는 것이 문헌적으로 많고 또 부드럽다는 이유로 나오는 반대론을 깨부수고 단연코 우리나라를 힘차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니폰'을 채용하기로 하고, 앞으로는 국호를 '니폰'으로 통일하기로 하였음을 내각과 외무성에도 보고했다."

이후 NHK도 방송용어 및 발음조사개선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공식국호로는 '니폰'을, 그 밖의 경우에는 '니혼'을 사용하기로 한다. '니폰'에 담긴 의미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학자는 오쿠마 도쿠이치란 사람이다. 1935년에 낸 '대일본 국호의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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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으로 힘을 가득 채워 '닛'이라 발음하고, 그 힘을 밖으로 방사하여 '뽄'

"황국(皇國)의 국호를 힘차게 '니폰(닛뽄)'으로 읽는 것이 지당하다. 닛(ニッ)이라는 촉음은 내부에 힘을 가득 채은 다음, 밖으로 대발전을 촉개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뽄'은 충실한 힘을 강렬하게 방사하여 앞에 있는 장애물을 돌파 매진하려는 가장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니폰'이라는 이름이야말로 태양과 함께 영원무궁, 아니 번영에 번영을 거듭해가는 '태양의 나라(히노구니)' 의 국시에 가장 적합한 호칭이다."

일본인들에게 '니폰'이란 호칭에는, 잊지 못할 군국(軍國)의 추억'이 숨어 있는 게 사실이다. 강한 나라의 이미지와 국가팽창주의의 기억들이, 그 나라의 위정자와 지도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현상으로 읽힌다. 대중이 '니혼'이란 발음을 친근해하고 일상적으로 쓰는 것과는 다른, 국가적인 욕망이 담긴 '의식적인 호칭'인 셈이다.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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