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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백석이 창고의 쌀독 뒤에 앉아 그만 울어버린 까닭

최종수정 2017.03.13 22:48 기사입력 2017.03.1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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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시샘 - 백석의 '고방', 어린 마음이 들어앉은 풍경을 실감영상으로 그린 시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꿰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 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집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끼 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고방 / 백석


어린이 백석이 창고의 쌀독 뒤에 앉아 그만 울어버린 까닭


■ 이 시를 읽고 그냥 다 알아들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아무래도 1930년대 평안도에서 쓰던 생활어들이 익숙하지 않으니, 슬프게도 '번역'이 필요하다. '고방'을 몇 번 읽다보면, 나는 이내 백석이 된다. 백석 속에 들어있는 아이 마음이 되어, 경주의 아동(雅洞) 외갓집으로 곧장 달려간다. 제목에서 쓴 고방은 '광'이라고 하는 창고방이다.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질동이는 질흙으로 빚은 동이이다. 동이는 그릇보다는 키가 크고 바닥도 널찍한 용기이다. 어딘가 한 모퉁이가 깨져 이가 나가있는 질동이 하나가 기억난다. 그 속에는 송구떡이 들어있다. 송구떡을 우리는 송기떡이라 불렀다. 경상도에선 소나무를 송기라고 했다. 구멍을 궁기(굼기)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소나무의 속껍질을 멥쌀가루에 섞어 반죽하여 만든 떡이 송기떡이다.

아마도 제사때 만들어 쓰고 먹고는 넣어둔 것이리라. 허기를 때우는 맛으로 먹는 떡인지라, 별로 인기는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런 것에 질리기 십상이다. 백석이 재치가 있는 것은, 송구떡 얘기만 하지 않고, 거기다가 염치없는 집난이 얘기를 덧붙인데서 엿보인다. 제사가 끝났으면 얼른 가야 밥 먹는 입을 줄일터인데, 통 가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

집난이는 집을 나간 사람을 말하는데, 대개 시집을 간 딸을 가리킨다. 외지에 나가 따로 사는 사람도 집난이다. 어쨌든 이제 제삿밥 한 두끼 먹었으니 가줘야 하는데, 무슨 심산인지 눌러앉아 있는 미운털 '늙은 고모'에 송구떡을 비유한다. 끈질기게 눌러앉아있는 폼이 똑같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여먹었다


오지항아리는 오짓물을 들여 구운 항아리이다. 오짓물은 잿물인데 질그릇을 만들 때 덧입히는 염료이다. 질동이는 바깥쪽에 있고 오지항아리는 보다 더 구석에 있었을 것이다. 그 항아리 속에는 탁주가 있다.

삼춘이 좋아하는 것인데, 우린(나와 사춘) 그게 맛있어서가 아니라 삼춘의 흉내를 내려고 먹었다. 임내는 입으로 내는 흉내를 말하는데, 아마도 '커억, 으엇, 잘 마셨다' 따위의 말과 소리일 것이다. 사춘과 나는 오지항아리에 띄워져 있는 조롱박으로 술을 조금씩 떠서 입에 넣고는 턱으로 흘러내리는 뻑뻑한 술을 닦으며 그런 소리를 냈을 것이다.

삼춘은 밥보다 그걸 더 좋아하는데 우리가 먹어보니 시큼털털하니 참 맛도 없다. 참 이상한 삼춘이야. 채여먹는다는 것은, 가로채서 먹는 것을 말한다.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듯, 삼춘이 먹기 전에 우리가 먼저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 점이 재미있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꿰었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셔서 이미 귀가 먹었는데, 이게 또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기에는 좋았다. 제삿일을 돕는다고 앉아있는 것이었으나 밤을 까는 것 산적을 꼬치에 꿰는 것 모두 하나의 놀이였다. '밝다'는 아마 '“라는 뜻이라. 밤을 까고 속알을 “틂뺨걸 평안도에선 그렇게 표현했나 보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

할아버지 얘기다. 귀머거리 할아버지는 평생 농투사니로 살아 억센 손을 가지고 있었다. 곰발바닥같은 손을 내어두르는 건 느릿한 동작이다. 손주 하나 둘이면 모르겠으나 그 사춘들이 여럿 모이면 오히려 일하는데 방해가 되어 이것저것 제지하느라 성가시다.

그래서 손으로 저리 가서 놀라고 천천히 휘젓는 것이다. 귀가 어두워 그러신지 말씀도 그다지 없으시다. 백석은 여기서도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쫓는 동작과 곰이 파리떼를 쫓는 동작을 겹쳐놓음으로써, 실감을 돋웠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나무말쿠지는 나무로 만든 못인데 벽에 박혀있는 것이다. 대개 옷걸이 용도로 쓴다. 그런데 광에 있는 말쿠지에는 짚신이 걸려있다. 짚신을 만드는 것은 '삼는다'는 표현을 쓴다. 거기엔 짚을 잘 꼬아 엮는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둑둑이'는 '둑이'는 10을 의미하므로 둑둑이는 '많이'라는 의미이다.

걸린 짚신은 사람신 같지 않고 소의 신발같다. 아까 곰을 발같은 손이니 발 또한 소의 발처럼 크고 우악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신어야 하는 짚신이니 사이즈가 우람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 아이 눈에는 그게 더욱 과장된 크기로 보였을 것이다.

이쯤에서 광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백석은 자신이 광에 들어가서 만나는 순서대로 진술하고 있는 듯 하다. 질동이는 문간에 있고, 그 옆 구석에는 오지항아리가 있다. 그리고 광 한가운데선 밤을 까고 산적을 꿰던 널찍한 공간이 있다. 거기엔 할아버지의 추억이 그대로 사물거린다. 그러다가 조금 더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면 벽에 커다란 짚신이 여러 켤레 걸려있다.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도록 아마도 약간 깊고 높은 곳에 걸어놓았을 것이다. 매달린 짚신은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의 모습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귀먹고 말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 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이 구절은 '고방'이란 시 전체를 사랑스럽게 한다. 어린 시절엔 이렇게 숨어있고 싶은 심리가 늘 있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홀로 들어앉아있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나는 다락에도 들어가고 천정에도 올라고보고 광의 시루 구석에도 처박혀 앉아있어 보았다.

백석은 쌀독 뒤에 숨어있다. 광에는 쌀을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귀한 것이니 만큼 구석자리에 정하게 뒀을 것이다. 거기서 나는 만화를 보고있었지만, 백석은 별 하는 일도 없이 어른들을 곯려주려고 숨바꼭질하듯 숨어있었다. 어머니가 그걸 모를 리 있었겠는가.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을 것이다. 아이는 그게 왠지 즐거웠다.

그런데 어머니 소리가 잦아지니 컴컴한 광이 괜히 무섭다. 할아버지가 이 광에, 무서운 말이 산다고 그랬는데... 아까까지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광에 있는 거뭇한 물건들이 모두 괴물처럼 보인다. 엄마아아아.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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