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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시샘]삭금포구와 된장물회, 그리고 슬픈 하룻밤

최종수정 2017.03.12 10:22 기사입력 2017.03.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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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권의 '삭금포구에서' - 나는 왜 가끔 저 낯선 항구로 돌아오는 것일까

삭금을 물어보지만
아는 이가 없다.
밤 깊은 여자 만(灣)
외등 불빛 줄지어
어둠 속에 떨고 있는데

초행길 나그네는
술 잔을 들이키고
다시 묻는다
언제 적부터 삭금이었느냐고
바람소리는 벌써
저승으로 가버린 사람처럼
아득한하다

아낙의 고향은
바다 건너 약산이란다
갯벌이 막히면서부터
스무 해 째 된장물회를 판다는
손끝에서
시큼한 해초냄새가 번졌다

삭금을 알지 못하였지만
삭금의 된장물회는
아낙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으니
어쩔 것이냐고
저녁 바람이 객창을 들썩이고 간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포구
낯선 이름에 빠져 흘러온 길
삭금은 꼭 어느 생애의 거처와 같이 쓸쓸하다
갈 곳 없는 떠돌이의 심사를
얼큰한 된장 물회 한사발에 풀어보지만
맹물 같은 술잔 너머
지나온 길이 속절없다

삭금포구에서 /이형권

[빈섬의 시샘]삭금포구와 된장물회, 그리고 슬픈 하룻밤



■ 포구에는 경계(境界)의 냄새가 있다.

익명의 포구는 툭 터져버린 바다를 가리키며 부끄럽게 주저앉은 뭍이다. 포구는 뭍에 앉아있으면서 평생 바다만 바라보며 제 정체성을 잃어버린, 내면없는 뭍이다.

포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잊는다.

코끝에 걸리는 비릿하고 퀭한 바다가 있고 귓톱에 걸리는 멍들고 아픈 바다가 있다. 눈썹에 흔들리는 수평선 한켠에 사물거리는 것들이 있고 입 속에 꼬물거리는 해물들이 꿈꾸는 바다가 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삭금포구는 그래서 막 이제 이름이 돋아나는 첫날처럼 진흙 속에서 작은 구멍과 기포같은 것으로 엎드리고 있다.

고하도 용머리

고하도 용머리




떠돌이는 뭍을 바다 삼아 떠돌다 여기 포구에 닿았다. 이제 바다로 갈 것도 아니다. 뭍의 바람과 파도에 떠밀려 여기까지 온 것일 뿐이다.

그의 영혼은 삭았고 인생은 심각하게 금이 갔다. 그래서 삭금포구이던가.

된장물회에는 곰삭은 뭍과 비릿한 바다가 포구처럼 버무려져 있다.

바다 부근에서 바라보면 인생은 다 똑 같다. 슬픔도 슬프지 않지만 기쁨도 기쁘지 않다. 그저 한 이랑의 파도가 이룬 지붕과 골짜기처럼 넘실거리는 먼 풍경일 뿐이다.

떠돌이는 하룻밤 귓속에 파도소리를 집어넣을 것이지만 아침이면 또 떠난다. 어부들이 지상의 배를 채우러 배를 미는 것처럼, 아침이면 세상바다는 늘 떠나는 풍경이 있다.

저물 무렵 삭금포구에는 무명의 포구같은 이형권 시인이 머물러 있으리라. 돌아보라, 인생은 슬픈 하룻밤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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