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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한 짐승과 함께 천국 가기를 기도함

최종수정 2017.03.09 06:04 기사입력 2017.03.0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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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시샘 -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오 주여, 내가 당신께로 가야 할 때에는
축제에 싸인 것 같은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로
해 주소서, 내가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낮에도 별들이 빛나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나 자신
선택하고 싶나이다.

내 지팡이를 짚고 큰 길 위로
나는 가겠나이다. 그리고 내 동무들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나이다 - 나는 프랑시스 잠,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하느님의 나라에는 지옥이 없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말하겠나이다 - 푸른 하늘의 다사로운 동무들이여,
날 따라들 오게나, 갑작스레 귀를 움직여
파리와 등에와 벌들을 쫓는
내 아끼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짐승들 사이에서, 주여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도록 해주소서.
이들은 머리를 부드럽게 숙이고
더 없이 부드러워 가엾기까지한 태도로
그 조그만 발들을 맞붙이며 멈춰 섭니다.
그들의 수천의 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허리에 바구니를 걸친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등에 울퉁불퉁한 양철통을 실었거나
물 든 가죽부대 모양 똥똥한 암당나귀를 업고
지친 발걸음을 옮기는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파리들이 귀찮게 둥글게 떼지어 달려드는
피가 스미는 푸르죽죽한 상처들 때문에 조그만 바지를 입힌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주여, 나는 당신 앞에 이르겠나이다.
주여, 내가 이 당나귀들과 더불어 당신께 가도록 해주소서.
소녀들의 웃음짓는 피부처럼 매끄러운
살구들이 떨고 있는, 나무들 울창한 시내로
천사들이 우리를 평화 속에서 인도하도록 해주소서.
그래서 영혼들이 사는 그 천국에서
내가 당신의 그 천국 시냇물에 몸을 기울일 때
거기에 겸손하고도 유순한 그들의 가난을 비추는 당나귀들과
영원한 사랑의 투명함에
내가 닮도록 해주소서.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 프랑시스 잠

호주의 목장주들이 사서 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당나귀

호주의 목장주들이 사서 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당나귀




■ 어린 시절, 나를 따르던 개 '해피'와 살 때, 내가 죽으면 해피와 같이 가면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으면, 끔찍한 외로움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혼자 죽어야 하는 인간은, 결국 쓸쓸하다. 죽어서 가는 길이 천국으로 예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죽는 일은 혼자서 해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살아있을 때 위로가 되는 것들이란, 태어나면서부터의 무한한 고독을 잠깐 속이고 달래는 것들이 아니던가. 인간관계들이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가 그렇고, 부모와 자식들이 그렇고, 세상의 영예와 부귀들이 또한 그런 잠정적인 위로들이다.


혼자서 세상에 나왔고, 다시 혼자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프랑시스 잠도 한 모양이다. 당나귀의 행렬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마음과, 당나귀들의 고통에 대한 덤덤함과 삶의 문제들에 대한 대범함. 모든 것을 감내하고 용서하는 겸손. 그런 것들과 함께라면 외롭지 않으리.

이 선한 짐승과 함께 천국 가기를 기도함



저 프랑시스 잠과 함께 걸어가는 하느님같이 생긴 당나귀를 생각하노라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고 때로 우습게 보인다. 당면한 고통들과 문제들 또한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잠의 당나귀를 만난 뒤로 나는, 어쩌면 이 묵묵한 대열에 문득 순정한 시인과 동행하기를, 깊이 동경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나서, 낡은 시집을 뒤졌다./빈섬.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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