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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단弄단] 극우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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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환 러브레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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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촛불 집회에 몇 차례 나갔을 때, 내가 궁금했던 것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버티는 대통령의 심중(心中)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나의 답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자기 기만. 자신이 저지른 일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즉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에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초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노년층이 주를 이룬 태극기 집회였습니다. 이번에는 그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궁금했습니다. 이들은 왜 거리로 몰려나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구호를 외치며, 심지어는 살인과 테러, 내란을 부추기는 극언에 동조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광기에 휩싸이게 했을까? 사이비 종교집단 같은 주최측이나 질 나쁜 정치인들의 거짓 선동에 홀린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쉽지만, 그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 한 참을 생각하다가 문득 '이아고'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질투와 오해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에서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자가 부하였던 이아고입니다. 그럼 왜 이아고는신망과 능력을 두루 갖춘 오셀로를 공격했던 것일까요? 이아고는 1막의 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어 놈(오셀로)을 나는 증오해. 내 이불 속에 기어들어 나 대신 내 아내와 무슨 짓을 했다는 소문이 있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소문을 들은 이상 실제로 있었던 일로 간주해서 복수를 하지 않으면 난 직성이 풀리지 않지."

여기에 이아고를, 즉 21세기 대한민국의 극우파를 분석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1)소문 (2) 알 수 없지만 (3) 간주 (4) 직성, 그리고 (5)복수입니다. 이아고처럼, 극우파의 귀도 열려 있습니다. '단톡방'에 수시로 올라오는 글들에 눈도 번득입니다. 소문을 만들고, 그것에 귀기울이는 것은 인류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탓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합니다.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지만. 무지(無知)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고, 막지(莫知)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해볼 의지도, 노력도 내팽개치고 무지막지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즉 세번째 단계인 '실제로 있었던 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직성대로 복수에 나섭니다. 직성은 이성이 아니라 기질입니다. 소문으로 시작된 것이 겉잡을 수 없는 복수로 치닫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이아고는 소문을 믿으려고 했을까요? 그에 대한 힌트가 2막에 나옵니다. 이아고는 자신의 처(이밀리아)에 대해 "집안 일에는 게으르면서도 이불 속에만 들어왔다 하면 부지런해진단 말이야"라고 말합니다. 선입견 혹은 편견. 불안과 공포.

# 아버지 친구 중에 제가 존경하는 분이 있습니다. 팔십이 넘은 그분은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학업에 매진했고 번듯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 분은 제게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글들을 보냅니다. 배울 만큼 배운 그 분은 왜 소문을 확인하고, 다른 의견들도 살펴보는 신중함을 잃어버린 것일까? 전쟁과 가난의 기억, 늙고 무시당하는 현실? 태극기 집회에는 짜증이 나지만, 그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냉전과 독재의 아수라장 속에서 정신의 균형감각이 훼손돼버린, 동시에 사적 경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이아고들’ 상당수가 노인이라는 사실 앞에 나는 우울해집니다. 욕을 할 수도 있지만, 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아고의 증오를 잠재우고, 그의 복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윤순환 러브레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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