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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시샘]달을 발견한 남자, 김소월

최종수정 2017.02.24 08:38 기사입력 2017.02.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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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에 담긴, 달과 그대와 나의 우주적 숨바꼭질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자료사진. 사진=아시아경제DB

자료사진. 사진=아시아경제DB



어린 시절부터 무시로 낭송하던 시, 한때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사가 되어 이 땅에 메아리치던 시. 너무 쉽게 읽어냈기에 더 이상 읽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 시를, 새벽에 문득 다시 읽는다.

이 시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여지 없이 드러내고 있는 듯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별로 꺼낸 말이 없다. 저 시 속의 세상엔, 압도적인 달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 뿐이다. 달과 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는, 거듭 반복되면서 발견과 인식을 확장한다. 첫 연에선 '달'을 발견한다. 지금껏 본 달은 그저 거기에 당연히 있는 것이었고 무심히 바라본 것이었다. 그것은 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도 않았고 나와 상관 없는 먼 곳의 객체일 뿐이었다.

두번째 연에는 달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 새로운 대상이 겹쳐져 있음을 발견한다. 달이 달이 아니라는 걸 발견한다. 달이 아니면서 달이 아닌 것을 보고자 하는 그 마음이 강렬해진다. 달이 달이 아닐 수 있다는 발견은, 세상의 모든 것이 그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되리라.

세번째는 달이 밝음을 발견한다. 오늘따라 저렇게 달이 밝아 저절로 거기로 눈이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달이 밝아서 그쪽으로 눈이 가나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는 달이 밝아도 그렇게 유심히 쳐다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무엇이 밝아진 것인가. 달을 보는 눈이 밝아진 것이다. 그 눈은 달과는 상관 없이 마음 속에 크게 뜨고 있는 눈이다. 달을 밝게 인식하는 새로운 눈이다. 이른 바 동공의 확장이다. 달을 인식하는 까닭은 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며 내가 지니고 있는 어떤 마음 때문이다.

네번째는 달의 소외를 발견한다. 달을 통해 보고자 하는 대상은 보이지 않은 채 달은 그저 달로 존재하고 있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달은 달일 뿐이니, 달에서 다른 것으로 확장하고자 했던 마음은 좌절을 겪는다. 달에서 다시 내려와 '나'로 주저앉는 경험이다. 그것이 설움인 까닭은, 달과 나의 문제가 진정한 관계가 아니었고, 달은 다만 제3자로 나아가려는 나의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무너지면서 그가 없는 현실이 새삼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빈섬의 시샘]달을 발견한 남자,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 네 가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달의 존재를 몰랐고, 달을 통해 그리움이 생겨난다는 것도 몰랐고 달 속에 생겨난 환한 그리움 때문에 달과 합일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는 것도 몰랐고 그 욕망이 결국 성공할 수 없기에 설움을 안게된다는 것도 몰랐다. 다시 풀면, 달=달, 달=그리움(달이 아닌 대상), 달=쳐다봄(달이 아닌 주체), 달=달. 처음의 등식과 마지막의 등식은 같은 형태를 지니지만, 인식이 확장된 다음의 달은 사랑으로부터 소외받은 비창이 된다.

달은 달이었다
달은 달이 아니다, 그리운 누구이다
달은 달이 아니다, 그리워하는 '나'이다
달은 달일 뿐이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시인 셈이다. 아름답고 그림같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그 말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고 우주 속에 달과 나를 배치하여 내 마음이 움직이고 새롭게 무엇인가를 깨달아가는 구도의 현장같은 적요한 시. 어려운 말이 한 마디도 없지만 지극히 심오하여 인간이 인간을 사모한다는 일을 우주적으로 펼쳐놓은 언어의 마술이 아닐 수 없다. 달은 달이고 나는 나다. 나는 달이 아니며 달은 내가 아니다. 당신은 내가 아니며 나는 당신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이고 싶었듯 나도 당신이고 싶었다. 합일에 대한 미친 격정과 그 소외가 주는 영원한 비탄. 명멸하며 사라져가는 인생 속에 떠오른 달을 생각한다.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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