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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푸념과 넋두리는 귀신의 말이었다

최종수정 2017.02.24 08:17 기사입력 2017.02.2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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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 대신해서 무당이 쏟아내는 꾸지람과 불만…일상용어 된 건, 사는 게 곡할 노릇인 탓?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넋두리와 푸념은 굿판에서만 쓰이던 말이었다. 사람이 죽은 뒤 망자의 넋이 저승에 잘 가기를 비는 무속신앙의 리추얼을 굿이라고 부른다. 무당은 죽은 이의 넋을 대신해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기도 한다. 살아생전 억울했던 일, 가족에게 미처 못했던 이야기. 이런 것들이 무당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죽은 사람은 남은 한을 풀고 이승에 남은 가족 또한 못 다한 마음을 푸는 일종의 소통행위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의 넋을 대신해 무당이 쏟아내는 말을 넋두리라고 불렀다. 무당의 말이 조금 세지면 망자의 꾸지람이 나오기도 하고 불만이 터지기도 한다. 이것을 푸념이라고 한다. 푸념은 무당이 귀신의 뜻을 받아 망자 대신 꾸짖어주는 일이다.


영화 '곡성'의 한 장면.

영화 '곡성'의 한 장면.



넋두리와 푸념은 죽은 자의 말이었다. 죽었기에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매개자인 무당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소통 방식인 셈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보니 죽은 사람만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산 사람도 제 때 제대로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지 못한다. 그러니 귀신과 다름 없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거나 슬그머니 털어놓는 한탄과 하소연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넋두리요 푸념이 되었다.

넋두리와 푸념이 많은 세상은, 풀지 못한 한이 많은 세상이며 원망과 슬픔이 많은 사회이다. 요즘에야 굿이 희귀한 풍경이 되었지만, 이 땅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상의 장면들이었다. 죽은 자를 만나는 일도 그랬고 저렇게 죽은 자와 소통하는 일을 보는 것도 그랬다.
넋두리는 넋을 무당의 육신에 들인다는 의미의 '넋들이'에서 왔을 것 같으나 어원이 밝혀진 건 없다. 푸념은 맺힌 것을 푸는 념(念)일 것 같아보이나 역시확실하지 않다. 그말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감춰지는 것이 훨씬 그 신앙의 신비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굿판에서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 말을 쓰고 전하기 시작했으리라. 왜? 세상이 죽은 자처럼 원통하고 답답한 일이 많아져서일 것이다. 청춘백수, 가계부채, 명예퇴직, 흉악한 범죄들, 정치적 패악들, 온갖 부패들. 이런 것들이 동시다발로 가중되는 세상이니 넋두리와 푸념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사는 일이 곧 귀신이 곡할 노릇이 된 셈인가.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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