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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단弄단] '퍼스트 무버'를 기다리며

최종수정 2017.02.15 09:31 기사입력 2017.02.1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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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1. 장충모(張忠謨)는 1931년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에서 태어냈다. 그의 가족은 1948년 홍콩을 거쳐 194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가 MIT로 옮겨 공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영어 이름은 모리스(Morris)다. 졸업 후 작은 반도체회사를 거쳐 1958년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입사했다. 재직 중 회사의 배려로 스탠퍼드대학에서 공부를 더 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TI에서 25년 근무하면서 세계 반도체사업을 담당하는 부사장까지 지냈다. 1984년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사장으로 옮긴다. 대만 정부가 그에게 연락한 건 이때였다. 대만 정부는 1985년 그를 국책 산업기술연구소(ITRI) 회장으로 초빙해 대만의 산업기술개발을 의뢰했다.

그는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생각해냈다. 당시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생산을 외주로 돌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일본 반도체공장에 생산을 맡기기는 꺼렸다. 설계기술이 노출될 위험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만은 설계는 하지 않고 수탁해 생산만 하면 기회가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가 주도해 1987년에 설립한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가 됐다.

#2. 서정진(徐廷珍)은 1957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했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했다. 1985년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해 기업 컨설팅 관련 업무를 했다. 1991년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발탁돼 임원까지 올랐다. 1992년 한국품질경영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해 활동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에 퇴사했다.

1999년 대우차 기획실 직원 10여 명과 함께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했다. 창업할 때무터 바이오산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2004년부터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의 바이오의약품 원료를 생산대행하면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2005년 미국 학회에서 항체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성장성을 확신하게 됐다.
7년 연구 끝에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렘시마를 개발해 2012년에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았다.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을 치료하는 렘시마는 지난해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렘시마는 2013년 수출되기 시작한 이래 지난해 6월 국내 바이오 의약품 사상 처음으로 누적 수출액 1조원을 돌파했다.

두 경영자는 모두 새로운 산업을 개척했다. TSMC가 선도하고 후발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대만은 파운드리 강국이 됐다. 셀트리온이 성과를 거두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잇따라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한국은 바이오시밀러 분야 강국이 됐다. 셀트리온이 2001년에 둥지를 튼 송도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경제성장이 제도의 문제인지 사람(기업가)의 문제인지 생각하게 한다. 서 회장은 사실상 홀로 한국 바이오시밀러 산업을 개척했다. 그는 바이오시밀러 전문가가 아니었고 "사기꾼"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으면서 사업을 일궜다. 장 회장은 반도체 전문인력으로 관이 제공한 마당에서 자신의 기획력을 한껏 펼쳤다. 퍼스트 무버 기업가가 나오도록 하는 정해진 방법은 없는 듯하다. 기업가정신이 고취되고 발휘되게 하는 제도적·사회문화적 기반과 토양이 필요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하지 싶다.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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