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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넌 촛불을 갈등이라 부르지만, 난 민주주의라 부른다

최종수정 2017.02.14 14:49 기사입력 2017.02.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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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하나가 품고 있는, 숲의 비밀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갈등이란 말. 너와 나를 그토록 화나게 하는 마음의 뒤엉킴. 나는 이리 가자 하고 너는 저리 가자 하는데 마음을 뻗대며 서로를 막아 서로 꼼짝하지도 못한 채 미움만 부글부글 끓이는 그 갈등.

갈등이란 말을 살펴보면, 칡(葛)나무와 등(藤)나무란 말 뿐일세. 칡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법이 드문데, 하필 왜 두 덩쿨나무를 싸움의 양쪽에 몰아넣은 것일까.

원래 갈등은 칡나무와 등나무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하네. 두 나무는 그저 전우일 뿐이네. 진짜 갈등은 소나무와 칡-등 연합군 간의 싸움이라고 하네.

소나무는 숲의 독재자일세. 소나무 한 그루가 높이 솟아오르면서 빽빽한 침엽으로 햇살을 가리고 제초제인 송진을 마구 뿌려 제 밑에는 아무런 풀도 작은 나무도 자라지 못하게 하지.

숲속여행 해설

숲속여행 해설

원래는 모든 나무들이 골고루 햇살을 쬐며 민주주의로 공존하던 숲이, 소나무가 나타나면서 지옥이 되어버린 것이지. 소나무 밑에는 초목들이 모두 죽어 없어지고 오직 그 나무 하나만이 땅의 영양과 하늘의 햇살을 독차지하게 되지. 소나무 숲은 그러니까 모든 민초를 제거하고 저 홀로 독야청청하는 쾌적한 독재의 현장이라네.

이 소나무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많은 풀들과 작은 나무들이 덤벼들었지만, 그늘에 말라 죽고 송진에 시들어 죽었다네. 그런데 칡나무와 등나무가 죽기살기로 민주화 한번 해보자고 눈을 맞췄다네. 칡나무는 소나무에서 10미터 동쪽에 뿌리를 내리고 소나무를 향해 기어왔다네. 등나무는 10미터 서쪽에 뿌리를 내리고 소나무를 향해 돌격했다네.

둘은 잽싸게 소나무를 타고 감아 올라갔지. 양쪽에서 헤드록을 하기 시작했지. 소나무는 달려드는 놈들을 뿌리치려 애썼지. 그림자로 말려 죽여보고 송진을 뿌려 시들어 죽게 해보았는데, 잠깐 죽는 듯 하더니 그뿐. 먼 곳의 뿌리에서 다시 기운을 받아 미친 듯 기어올라 기어이 소나무의 숨통을 조였지. 거대한 소나무가 마침내 말라 비틀어지면서 쿵 쓰러지는 소리.

만세! 소나무가 쓰러지자 숲에는 햇살이 들어왔고 바닥에선 작은 초목들이 솟아올랐지. 다시 풀들의 세상이 온 거야. 칡나무와 등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쓰러져 그간의 싸움에 기진맥진해 가만히 눈을 감았다네.

키크고 늠름하며 쾌적한 숲을 통치해온 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은 소나무를 슬퍼하며 칡과 등나무를 가리켜 갈등이라 불렀다네.

숲의 갈등은 과연 칡과 등나무 때문에 생긴 것일까. 그들의 목숨 건 민주화를 우린 자주 갈등이라 말하고, 정상화의 소란을 자주 갈등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촛불이 갈등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노니, 안 보이는가. 숲을 농단한 큰 나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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