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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머리를 줄이고 날개를 흔들어라

최종수정 2017.02.04 13:05 기사입력 2017.02.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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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시샘 - 윤준경의 '새의 습성'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날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머리를 줄이고 날개를 흔들어라


새를 동경한 것은 막연한 욕심이었을 뿐
날 수 있는 힘의 논리를
연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 그의 가벼움이 부러웠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부러웠을 뿐
나르는 연습조차 해 보지 않았고
나뭇가지 위에 납죽 앉아 보지도 않았다
인간 이상의 습성을 가지고 싶은 욕심에
나는 다만 새가 되고 싶었다

생각하면 새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부글부글 밥물이 넘치는 전기밥솥을 버리고
찍찍거리는 티브이를 버리고
언제 읽을지 기약도 없는 책들을 버리고
옷을 버리고 옷장을 버리고
지금 막 꽃피기 시작한 화분을 버리고
내장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아주 작아진 몸과 머리가 되어
오래 익힌 인간의 습성을 버리면
날개는 저절로 돋아날 것이다

나무가 새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가 나무를 받아들인다
방금 저 멧새가
아무도 찾지 않는
대추나무 가지를 흔드는 것을 보아라
대추나무는 비로소 집이 되는 것이다
윤준경의 '새의 습성'


■ '새'에 관한 시로 나를 처음으로 뒤흔든 문장은 박남수의 '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그 순수를 겨냥하지만//매양 쏘는 것은/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대목은 충격이었습니다. 관념의 새와 실재의 새간의 간극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새를 둘러싸고 있는 자유의 공기를 포획할 수는 없는, 언어나 표현의 무기력감을 이토록 선명하게 적출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살아있는 새를 겨냥했지만 잡아보니 죽은 새라는 것.

예전에 어느 신문사에서 경쟁사의 인재를 영입하는 것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딱 저꼴이었습니다. 펄펄 날아더니던 그 새를 잡아왔더니, 금방 죽은 새가 되어버린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새는 새의 몸뚱이만이 아니라, 새를 날게 하는 허공과 새를 몸부림치게 하는 벌레들의 유혹과 다른 새들과의 비정한 경쟁까지가 포함되어야 비로소 우리가 그리고 있는 그 새가 되는 것을 까먹었기 때문입니다.

윤준경의 '새의 습성'은 새가 되고 싶은 욕망을 내재화한 뒤 스스로 허공의 길을 내는 시입니다. "아주 작아진 몸과 머리가 되어/오래 익힌 인간의 습성을 버리면/날개는 저절로 돋아날 것이다" 우린 너무 무겁고 너무 많이 지상의 것들에 연연해하며 허공을 잃어버린 그 습성으로 오래 살아오면서 새가 되기를 포기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행기를 만들고, 드론을 띄우고,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혹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거나 장대 높이뛰기나 서커스 따위로 잠깐 '새'인 척 해보지만, 오히려 우리가 새가 아니라는 현실만 깊이 체감할 뿐 마음에 날개가 돋아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무꾼과 선녀와 같은 전설은, 인간의 무게와 승천하는 날개에 관한 긴장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죠. 수많은 신화들은 날개달린 인간과 날개달린 동물들을 싣고 있고, 박혁거세나 김알지와 같은 난생(卵生) 스토리들, 태양의 삼족오와 불교의 가릉빈가는 모두 새에게서 비롯된 인간의 환상을 품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윤준경은 내면의 새를 날아올려 아주 가벼운 몸으로 나무를 받아들여 하늘에서 서식하는 신화적인 자아를 박남수처럼 경쾌하고 건갈한 언어들로 길어냅니다. 주말 아침의 관성적 발상을 깨고 날아올라 우주의 공기를 흠씬 빨아들이게 하는 거대한 에어컨디셔너랄까요.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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