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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단弄단] ‘더러운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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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환 러브레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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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 초점을 맞춘 풍자 그림 ‘더러운 잠’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의 치부를 보여준 것 같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그림이 더럽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그림을 대하는 어떤 태도들에 더러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감히 대통령의 얼굴을 나체 그림에 갖다 붙여? 불경스럽고, 망측하게시리. 인격 모독이다.’
이런 태도는 권력자에 대한 전 근대적인 노예 근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 절차에 의해서 선출되고, 권력을 위임 받은 공복(公僕)이라는 개념이 없거나, 희미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무슨 일을 했는지가 국민적 관심사인 상황에서 그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풍자를 하는 것은 예술가의 의무이자 권리다. 특히 전시회장에 난입해 그 그림을 훼손한 극우 단체의 만행은 권력자에 대한 노예근성뿐만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사이비 종교적 태도를 보여줬다.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견딜 수 없어서, 동시에 자신들의 그런 굴종적인 태도를 얼버무리려고 풍자의 대상이 ‘권력’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신성이 모독될 수 없듯이, 권력도 모독될 수 없다는 생각은 더러운 것이다. 모든 것이 옹호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모독될 수 있다. 그것이 근대의 원칙이다.

‘여혐(여성혐오)이고, 성희롱이다. 불쾌하고 끔찍하다.’

가슴이 드러난 여성의 나체를 동원했기 때문에, 권력자에 대한 비판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희롱이며 여혐이다? 과연 그런가? 내가 알기로 여혐은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혐오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자들은 골이 비었어”라고 말하는 것이 여혐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자들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그림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을 혐오한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패러디의 소재로 작가는 많은 것을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세월호 7시간의 행적에 대해 ‘잠’이라는 모티브를 생각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잠자는 비너스’였다.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인가? 왜 하필 나체였냐고? 그게 여혐 아니냐고? 풍자의 대상이 여성일 경우에는 절대로 여성성(나체)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나체는 당연히 안 되고, 치마도 안 되며, 긴 머리도 사절이라고? 그건 모르겠고, 여성이 불쾌하게 느낀다면 성희롱이라고? 나는 이 그림에 여혐 딱지를 붙이는 것이야말로 ‘남혐’(남성혐오)의 혐의가 짙다고 본다.
‘예술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낮고 저급하다.’

그 그림이 저급하다는 데 대해서도 동의하기 힘들지만, 저급한 예술이라서 전시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저급인지 고급인지를 누가 정하는가? 박정희 정권이 1960~70년대에 우리나라 만화 산업을 고사시켰을 때 동원했던 논리 중 하나가 ‘저급’이었고, 그 정권이 대중가요에 재갈을 물릴 때 즐겨 썼던 말이 ‘미풍양속’이었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불가피하지만, 그 평가를 근거로 예술을 금지하는 것은 불가하다. 파시즘은 놀랍게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태도들 중에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것은 표창원 의원이 소속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태도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그 그림 전시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표 의원을 징계하겠다고 했다. 표 의원은 결국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공개 사과한다고 하면서 중요한 말을 했다. “당내 대선주자들도 피해를 당하셨다면 사과를 드린다.” 그렇잖아도 문재인 전 대표는 “그 그림이 국회에서 전시된 것은 민망하고,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정말로 국회에서 전시된 것을 문제삼고 있는가? 만약 표 의원이 그 그림이 전시되고 있는 국회 밖 미술관에서 축사를 했다고 하면 표 의원을 징계하지 않을 것인가? 정권교체를 눈앞에 둔 것으로 확신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이 사건이 중도층(및 일보 보수층) 민심에 악영향을 줄까 봐 전례 없이 신속하게 표 의원과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이 표 떨어질까 봐,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내팽개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표현과 예술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옹호다. 표 때문에 자유를 판 민주당은 각성해야 한다.

예술의 혼은 자유고, 그런 예술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윤순환 러브레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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