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태까지 오게 된 추동력은 무엇인가? 형광등 백 개의 아우라로 눈에서 레이저를 쏴대는 권력자 앞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인너 서클의 분위기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드러난 김기춘과 조윤선 등의 여러 행적에 비추어보면, 그들 역시 주도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끝없이 오르려는, 결코 놓지 않으려는 정치인의 권력욕구는 본능적인 것이다.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고, 창조적 기여를 해서 기특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욕구를 스스로 자제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욕구에 사로잡힐 경우 이를 통제해야 한다. 청와대로 집중된 권력의 분산, 출세지향주의를 완화시키는 교육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실무공무원의 역할이다. 이 사태가 워낙 고공에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하기에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들은, 약한 공무원이 정치권의 결정에 어쩌겠느냐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눈 밖에 나지 않게 버티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승진하려는 것이 공무원의 생리라면, 헌법가치를 침해하는 명령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블랙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원대상 여부를 특정한 것은 사무관에서 국장에 이르는 사회 엘리트들이다. 국가공동체에 대해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때는 그랬다고, 이런 때가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친일부역자가 해방될 줄 몰랐다고 변명하듯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윤석열이나 유진룡 또는 노태강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일, 인사상 조금 손해 보고 피할 수는 있다. 그런 행동들이 모여 집단적 거부의 몸짓이 된다. 이 일을 피해 본들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 변명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한 변명이, 누가 먹어도 먹을 눈먼 돈이라는 사기꾼의 자기합리화와 얼마나 다른가?
김환학 서울대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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