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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 문체부 공무원의 블랙리스트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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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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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의 여유도, 그 후유증도 겪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최 스캔들에 연루되어 구치소에서 대치동 특검을 오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삐 오가는 중에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문화예술은 정부지원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영역이다. 지원에서 배제되면 당장 생계의 문제가 닥치고, 삶이 곤궁해진다. 확인된 인원만 9000명 이상이 여기에 해당된다. 박근혜 정권이든 노무현 정권이든 어느 정권에서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할 때 정권획득의 전리품 나눠주듯이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줄 세우기를 할 수 있고 과시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권에 대한, 강한 자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사라지고, 사회는 생기를 잃어 질식할듯한 분위기가 된다. 조윤선이 국회에서 모른다고 완강히 버틴 것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해당자에 대한 지원중단이 얼마나 나쁜 일이며, 그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사태까지 오게 된 추동력은 무엇인가? 형광등 백 개의 아우라로 눈에서 레이저를 쏴대는 권력자 앞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인너 서클의 분위기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드러난 김기춘과 조윤선 등의 여러 행적에 비추어보면, 그들 역시 주도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끝없이 오르려는, 결코 놓지 않으려는 정치인의 권력욕구는 본능적인 것이다.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고, 창조적 기여를 해서 기특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욕구를 스스로 자제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욕구에 사로잡힐 경우 이를 통제해야 한다. 청와대로 집중된 권력의 분산, 출세지향주의를 완화시키는 교육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실무공무원의 역할이다. 이 사태가 워낙 고공에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하기에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들은, 약한 공무원이 정치권의 결정에 어쩌겠느냐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눈 밖에 나지 않게 버티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승진하려는 것이 공무원의 생리라면, 헌법가치를 침해하는 명령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물 안팎의 독일 젊은이들이 그러한 시험대 앞에 선 적이 있었다. 동서독 분단 시절, 적어도 200여 명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동독의 경비병들은 명령을 받고 발포 하였고, 도주를 막은 병사는 포상받거나 진급하였다. 구동독에서 합법이었던 이러한 행위가 형사법정에 올려졌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 모두, 논거는 다르지만, 그 경비병들에게 유죄를 인정하였다. 이 징집당한 젊은이들이야말로 눈앞의 탈주자들을 사살하지 않으면 명령불복종 또는 항명의 죄를 지는 모순의 상황 아닌가. 물론 이들은 집행유예 등으로 실형을 살지는 않았다. 반면에 연대장에서 정책 결정을 한 정치국 위원까지 2-3년에서 6-7년까지 중형을 부과하였다.

그런데 블랙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원대상 여부를 특정한 것은 사무관에서 국장에 이르는 사회 엘리트들이다. 국가공동체에 대해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때는 그랬다고, 이런 때가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친일부역자가 해방될 줄 몰랐다고 변명하듯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윤석열이나 유진룡 또는 노태강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일, 인사상 조금 손해 보고 피할 수는 있다. 그런 행동들이 모여 집단적 거부의 몸짓이 된다. 이 일을 피해 본들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 변명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한 변명이, 누가 먹어도 먹을 눈먼 돈이라는 사기꾼의 자기합리화와 얼마나 다른가?

김환학 서울대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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