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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단弄단] 이제 너무 흔해진 블랙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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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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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을 우리말로 '검은 백조'라고들 옮긴다. 그러나 검은 백조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형용모순이다. 백조의 다른 이름이 '고니'이므로, 블랙 스완은 '검은 고니'라고 하는 편이 낫다.

동양에서 고니를 백조라고 부른 것처럼, 서구에서도 스완은 순백색이었고 희지 않은 스완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 유럽인들은 17세기 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블랙 스완을 보게 됐다. 이후 블랙 스완은 '진귀한 것'을 뜻하게 됐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됐다.
투자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2007년 책 '블랙 스완'에서 그 뜻을 확장했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을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값으로,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알려지지 않아 발생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고, 발생 후에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해지는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책이 나오고 미국에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불거졌다. 이듬해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그러자 탈레브는 이를 예견한 인물로 통하게 됐다. 아울러 앞선 2001년 9월 11일 미국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와 이후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도 블랙 스완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블랙스완이 아니다. 위기가 펼쳐지고 확산되는 과정 전체를 내다본 경제학자는 없었지만, 몇몇 학자는 주택경기가 거품이라거나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하다고 경고했다. 대다수 경제학자와 경제주체가 이 경고를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여기엔 인간의 속성 중 하나인 군집행동과 집단압력이 작용했다.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이 위험과 경고에 가장 둔감했다. 집값이 계속 상승한다는 예상 아래 시장참여자들 모두 돈을 버는 마당에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보다 까칠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탈레브인지라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신이 만든 블랙 스완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할 만도 한데, 그가 그렇게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블랙스완이 아니라 자기부정적예언이 실현된 사례다. 자기부정적예언은 예컨대 '설연휴 어느 날 어느 시간대에 길이 가장 원활하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예상에 따라 그 시간대로 몰리면 그 무렵에 길이 가장 막히게 된다. 경제에서는 '현재의 자산가격 강세가 정상적이고 버블이 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자기부정적예언이 될 수 있다. 이런 전망에 따라 더 많은 투자자가 몰려 가격을 치솟게 하고 거품을 더욱 부풀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이런 논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 '블랙 스완'이 배경이 될 만한 이론을 제시하자 과거에 상상하지 못한 사태가 언제든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경제주체들이 가위눌리게 됐다. 국내에서 블랙 스완은 '주택시장 붕괴' '인구절벽' '퍼펙트 스톰' '삼성전자 위기' 등 이름과 형태를 바꿔 출몰한다. 그러나 경제는 대부분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예상보다 큰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완화할 수 있으며, 위기를 방지하는 일도 가능하다.

걱정스러운 일은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인지 모를 엄청난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다.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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