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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의 만인보] 三民국가 건설로 '다른 백년' 맞는다

최종수정 2016.11.22 14:43 기사입력 2016.11.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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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새 패러다임 모색하는 다른백년 이래경 이사장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면서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100년을 모색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창립된 사단법인 ‘다른백년’이 어느덧 5개월을 맞았다. 16일 오후 서울 공덕동 로터리의 한 건물에 자리잡은 이 법인의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 이래경 이사장(62)은 지난 주말 100만 촛불’의 의미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한국 사회라는 ‘열린계’가 스스로의 한계에 이르러 이 장애를 뛰어 넘기 위해 새로운 계로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재창조의 작업입니다.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은 ‘박근혜 퇴진’을 넘어선 것이어야 해요.”
그는 참다운 민주적 정치질서와 공의로운 사회경제시스템을 수립하는 것이 이 재창조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본(民本) 민생(民生) 민락(民樂)의 삼민(三民)의 국가가 그가 ‘다른’백년에 이루려 하는 새로운 나라였다.
“서체아혼(西?亞魂)의 견지에서 서구사회가 발전시켜온 법논리적 절차와 형식에 동아시아적 영혼을 불어 넣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의 말 속에 다른백년의 지향, 그가 다른백년 설립을 주도한 배경, ‘백년’이라는 담대한 명칭을 붙인 이유들, 그리고 그의 삶의 궤적이 어우러져 있었다.
“백년이라고 한 것, 그건 우리 사회를 좀 더 긴 호흡으로, 근원적인 시각에서 보자는 것, 백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역사적 지혜를 갖자는 것입니다.”

다른백년은 현재 사회경제적 패러다임 전환, 정치제도 개혁,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 시민역량을 높이기 위한 사회교육, 이 4개의 영역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을 담은 ‘한국보고서(Report of Korea, ROK)’를 작성하는 작업으로, 이를 내년 상반기에 내놓을 예정이다.

다른백년 설립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14년 5월이었다. 박근혜 정권 집권 2년차, 선거공약에서 내걸었던 복지 공약을 보며 조금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산산조각 난데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직후 한국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요청되던 때였다. 여기에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 갑오년 이후 두 갑자가 되는 해라는 점이 던지는 역사적 의미가 ‘갑오개혁 120년, 우리 사회의 플랜B를 찾아보자’는 움직임으로 나타나 올해 6월의 창립에 이르렀다.
지난 1973년 대학에 들어간 이 이사장은 학생운동에서 시작해 민청련 등 청년 및 민주화운동,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일촌공동체’등 사회운동을 꾸준히 펼쳐 왔다. 그는 애초엔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다. “유신이 뭔지도 몰랐고 ‘문제 서클’과는 가까이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내 생활에만 바빴던” 그는 3학년이던 1975년 4월, 농대생 김상진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쓰고 할복자살을 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장 야밤에 다니던 교회 건물에 들어가서 새벽까지 ‘인간해방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유인물 3000장을 만들었고 새벽 5시에 등교해 강의실과 화장실 곳곳에 뿌렸어요. 집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없자 내가 앞서 나가 묵념하고 연설을 했는데, 그 때문에 제적됐죠.”
급작스런 일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신학대학을 가려고 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인으로 “예수 신앙의 핵심이라 할 ‘나라와 그 의’(옳음)를 위해 자기를 던져야 한다고 늘 생각했던” 이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80,90년대 민청련에의 참여를 거쳐 그의 시민운동, 사회개혁운동은 ‘시민 스스로 상생하는 문화, 인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내세운 일촌공동체로, ‘인간의 존엄, 사회적 연대, 사회정의가 최대한 실현되는 행복한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로 이어졌다.
다른백년은 그 모든 고민과 실천의 연장선이자 누적이며 집대성이다. 그리고, 또 다른 출발점이다.

다른백년의 설립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사재를 털어 희사한 자금이 큰 토대가 됐다. 그는 88년부터 철도차량, 수력·지역난방 분야 대기업인 독일 호이트 그룹의 국내 영업을 거쳐 합자회사 호이트한국 대표를 맡아 왔다.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호이트 그룹 내에서도 매우 유명한 인물이 됐을 정도다. 전 세계에 200여개의 법인과 전체 직원 4만명을 거느린 연 매출 10조원 규모의 호이트 그룹에서 창업주 가족을 빼고 지분을 갖고 있는 건 그뿐이었다.

그의 사재 출연은 자신의 수입을 세금·가정·사회적 기부로 3등분한다는 평소의 원칙, 또 자신이 펼쳐온 ‘사회적 상속 운동’을 실천한 것이어서 그 자신으로서는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일촌공동체’에도 매년 1억여원씩 6,7년째 기부해왔다. 처음 결정을 할 때에는 매우 주저했던 기억이 있지만 이후에는 무심하리만큼 사무적이고 자동적으로 이뤄지더라고 그는 말했다.
“다행히 아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믿어주고 일체 개입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아요. 매우 고맙게 생각하죠. 정직하게 말하면 가끔은 ‘내 자신과 가족을 위해 허영도 부리고 호사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잠시 생각일 뿐 곧바로 떨쳐 버립니다.”
올해 초 은퇴한 그는 38억원쯤인 총자산에서 세금 8억원을 떼고, 나머지 가처분 자산 가운데 20억원 이상을 다른백년과 일촌공동체 등에 기금으로 낼 작정이다.

“청년 시절엔 ‘이건 아니다’라고 하는 막연한 분노감에 의해 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떠한 정립된 체계나 사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거야말로 청년 정신이었던 것이죠.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른 지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리와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야 한다고 하는 방향성을 마음속으로 깊이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 왔지만 도인의 풍모를 풍기는 인상처럼 무척 자유로운 영혼으로 느껴진다.
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라고 물었다.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과 타인을 향한 대화이자 채찍질이라고 봅니다.”
이래경과 그의 ‘동지’들은 대화와 채찍질로써 한국사회의 또 다른 백년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 하고 있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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