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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학칼럼] '성추행 갑질', 가장 잔인한 행위

최종수정 2016.10.25 10:08 기사입력 2016.10.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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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계가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가해자로 지목 받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회적 명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계 '권력자'들이다.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필자는 곧바로 20년 경력의 문화부 베테랑 기자에게 현 상황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다. 그는 곧바로 "우리나라 '개저씨'들의 전형적인 행태" 라고 답했다. ('개저씨'는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주로 여성과 약자에게 갑질을 일삼는 중년 남성을 비하하는 신조어다)

 사실 유명 인사들의 성추문 스캔들은 끊이지 않는 단골 이슈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한민국 문화계를 선도하는 인사들의 성추문 소식은 참으로 당황스럽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솔직히 대단한 권력과 지위, 재력을 가진 유명 인사들의 성 추문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호기심과 조롱거리일 뿐이다. 국민들 눈에 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거짓말, 인간적인 배신 등 비도덕적인 행위를 너무 쉽게 행동으로 옮기는, 그저 막강한 속물 집단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성추문은 비윤리적 행위 하나를 더했을 뿐이다.

 반면 문화ㆍ예술계 인사들의 성 스캔들은 사회적 수치심으로 다가온다. 문화ㆍ예술 분야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형이상학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권력의 날개를 달고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고발하는 한 편의 소설은 독자의 마음속에 인권의 소중함을 각인시키고 정의의 불꽃을 심어주는 영혼의 감로수로 작용한다. 또 인간적인 나약함과 슬픈 숙명을 진실 된 통찰력과 미려한 문장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시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야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의 카타르시스가 된다.
 인간은 마음 한 구석에 '비록 지금은 물질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에서 속물로 살더라도, 언젠가는 나도 고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창조주의 소중한 피조물로 돌아가리라'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화ㆍ예술은 이런 인간의 꿈을 담는 장터인 셈이다. 그런데 이 분야를 주도하는 실력자들이 속물 집단의 권력자들처럼 '을'의 입장인 젊은 여성들에게 성추행이라는 추한 갑질을 한 것이다.

 의학적으로 성(性)과 관련된 부적절한 행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천박하고 잔인한 행위 중 하나다. 인간의 뇌에는 태어날 때부터 성에 관한 본능적 욕구와 본능적 '수치심'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성의 실체를 모르는 유아기 어린이도 이 본능적 수치심 때문에 성 학대를 받은 경우, 그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이는 "아빠가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는 식으로 쉽게 밝히는 신체적 학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실 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종족 번식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본능을 행위로 보여주는 행태는 당사자의 인격과 직결된다. 정신의학적으로 인간의 내면에는 상대방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의 성적 호기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고 싶은 충동이 상존한다. 따라서 모든 문명사회는 종교ㆍ윤리ㆍ도덕 등을 앞세워, 또 교육을 통해 본능을 조절하는 능력을 훈련시킨다. 다행히 대뇌를 가진 고등동물인 인간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는 욕망을 억제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실 판단 능력인 '자아(ego)'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추행 스캔들이 반복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이를 막는 강력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건강의학칼럼] '성추행 갑질', 가장 잔인한 행위

 또 하나 정신의학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도덕적 허용 여부를 떠나 서로 원하는 성적 행동은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이 없다는 점이다. 기성세대 눈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10대 소년ㆍ소녀간 사랑 놀음도 본인들에게는 평생 간직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성인이라도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받은 경우엔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이 초래된다. 권력을 무기 삼아 자신을 전혀 이성으로 느끼지 않는 상대에게 성적 수치심을 초래하는 행위가 엄중한 제재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건강한 성부터 정착돼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갑'의 위치에 있는 권력자가 '을'에게 강요하는 모든 성추행에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확실한 불이익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성추문 발생율과 재발율을 줄일 수 있다. 또 피해자에 대해서는 정신적 상담을 통해 후유증을 치료받게 하는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끝으로 당신이 성 스캔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갑'이라면, 일터건 회식 자리건 성적(性的)인 화제를 꺼내기 전에 '만일 내 딸(아들)이, 내 누이(남동생)가, 내 아내(남편)가 사회에서 만나는 이성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면 내 기분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자. 만일 당신이 불쾌감을 느낄 것 같다면, 그 말은 결코 당신의 입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다.
 황세희 국립의료원 공공보건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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