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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학칼럼] 명의는 전문분야의 명의일 뿐

최종수정 2016.10.11 11:08 기사입력 2016.10.1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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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첨단 의료 기기가 산적한 초일류병원 명의의 존재는 빛난다.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진단하고 치료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일은 일상으로 일어난다. 물론 명의도 오진을 한다. 하지만 면밀히 분석해 보면 환자의 숙명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과계 명의인 경우, 수술 과정 자체가 신기(神技)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명의도 간혹 환자에 대해 무심하거나 무성의한 처방을 하는 듯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일은 특히 감기나 소화불량처럼 흔하고 간단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대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코가 막힌다' '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에게 명의들은 흔히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예요"라며 지나치거나 기껏해야 해열제 처방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환자들도 명의의 권위에 짓눌려 별다른 불평을 안 한다. 하지만 사소한 증상에도 환자는 괴롭다. 예컨대 젖먹이는 코감기만 들어도 밤새 킁킁거리면서 보채고 젖병 빨기도 힘들어한다. 보호자 역시 밤잠을 설친다.

가벼운 질병을 무심히 대하는 명의들을 얼핏 보면 '어렵고 위중한 병만 치료하다 보니 사소한 병은 병 취급도 안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알고 보면 비록 명의라 할지라도 본인이 평상시에 접하지 않는 증상에 대해서는 세심한 처방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물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명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감기만 하더라도 콧물ㆍ기침ㆍ재채기ㆍ목 아픔ㆍ열ㆍ오한ㆍ두통ㆍ몸살 등 사람에 따라 증상은 다양하다. 또 각각의 증상들은 저마다 존재감을 과시하며 환자를 괴롭힌다. 따라서 증상을 가볍게 해주는 대증(對症) 치료가 필요하다. 이때 최선의 방법은 환자 개개인의 증상ㆍ나이ㆍ전신 상태 등을 고려한 환자별 '맞춤 처방'이다. 당연히 대학병원 명의보다 수많은 감기 환자를 진료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동네병원 의사가 더 좋은 처방을 할 가능성이 높다.

[건강의학칼럼] 명의는 전문분야의 명의일 뿐

최근 사회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의료계 이슈는 고(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망진단서다. 발단은 주치의였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가 사망 원인을 병사(病死)로 쓰면서 시작됐다. 당연히 의료계 내에서도 이의가 제기됐고 지난 3일, 서울대병원과 서울의대는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를 조사위원장으로 하는 합동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린 뒤 조사위원회의 의견은 고인의 사망진단서가 "작성 지침과 다르게 작성됐고 사망의 원사인(原死因)이 머리 손상이므로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外因死)"라고 발표했다.
작성 지침과 다르다는 것은 틀리게 작성된 진단서라는 뜻이다. 사실 병사가 되려면 원사인을 급성경막하출혈 대신 병사에 적합한 급성신부전으로 썼어야 한다. 또 직접 사인도 심폐정지가 아닌 고칼륨혈증으로 적는 게 맞다. 이를 근거로 이 교수는 "백 교수가 외압에 의해 의도적으로 '병사' 진단서를 쓸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작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외압설을 일축했다.

그렇다면 서울대병원 명의가 부정확한 사망진단서를 쓰는 일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질문에 대해 의사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혹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답을 한다. 의사 교육과정에서 사망진단서 작성법은 의과대학 수업 시간에 1시간 정도 배우는 게 전부다. 대학병원 교수 중에는 지난 수십 년 간 본인의 손으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해 본 적이 없는 명의도 적지 않을 것이다.(사망진단서 작성지침도 2000년대 이후 바뀌었는데 아마 이 사실조차 모르는 교수도 많을 것 같다.)

의학적으로 사망진단서 작성은 법의학 분야다. 어떤 명의라도 올바른 작성법을 몰라서 지침에 어긋나는 진단서를 쓸 가능성은 있다. "내가 뇌수술을 받을 상황에서는 백선하 교수한테 수술을 받겠지만, 사망진단서를 맡기지는 않겠다"는 이윤성 교수의 설명이 이런 현실을 잘 설명해 준다.

문제는 백 교수가 자신이 작성 지침에 어긋나는 사망진단서를 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재로선 그의 심리 상태나 정신세계를 알 방법은 없다. 정신의학적으로 인간은 고통스러운 일에 직면하면 누구나 사실을 외면함으로써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런 의지가 강해지면 진실을 외면하는 '부정(否定, denial)' 심리가 발동한다. 나의 잘못이나 수치심, 죄책감 등 고통의 감정에서 벗어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인정하기 싫은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부정', 자신의 잘못을 그럴듯한 설명으로 포장하는 '합리화', 엄연한 사실을 자신의 희망대로 변형시키는 '왜곡', 스스로가 꾸민 말에 도취돼 자신도 믿어버리는 '공상허언증' 등 다양하다. 어떤 경우건 인간적 측면에선 이해가 된다. 하지만 진실이 왜곡될 수는 없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빨리 국민과 의료계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현명한 결론이 도출되기를 바랄 뿐이다.

황세희 국립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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